사랑의 편린들이 깔려 있었다. 해가 저무는 가을 산에는 저녁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북한산 대남문을 넘어 산성매표소까지 가는 길은 가을을 보내는 서운함이 짙게 드리워 있었다.

 

구기동 매표소에서 대남문까지는 2.5킬로미터다. 가을 햇살이 비교적 따사로웠다. 올라가는 길에는 가을색이 완연했다. 은은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진한 열정을 숨기고 있었다. 빨간 단풍도 몇 군데 있었다. 피를 토하며 사랑했던 여인의 가슴 속을 보는듯 하다.

 

등에 맨 배낭의 무게를 느끼며 나는 산을 올랐다. 오후 1시가 넘어 시작한 산행이라 내려오는 사람들 때문에 제대로 올라가기가 어려웠다. 떠나가는 가을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모두들 산에 온 것 같았다. 산에는 내려오는 사람에게 우선권이 있는 것 같다. 내려오는 속도와 중량 때문에 올라가는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길을 양보해 주어야 한다.

 

문수사를 지나며 잠깐 들를까 했으나 그냥 지나쳤다. 혜정 주지스님을 전에 우리 사무실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스님은 내게 책을 두권 선물로 가져다 주었다. 아직 제대로 읽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문수사와 대남문 사이에 배추밭이 있었다. 그 옆에 아주 잘 생긴 나무가 한 그루 서있었다. 요새는 나무가 잘 생겼으면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유심히 바라본다. 동물 못지않게 나무가 잘생겼다는 건 관심을 끈다. 대남문 앞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햇살이 아름답게 비추고 있었다. 가을 햇살은 푸근하다. 뜨겁지 않은 햇살을 맞으며 나는 또 가을의 열기를 가슴에 담는다.

 

대남문 부근에서 식사를 했다. 산에서 먹는 음식은 모두 맛있다. 맑은 공기와 함께 먹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사서 가지고 간 김밥과 배를 먹었다. 아주 맛있는 배라 그런지 물이 많았다. 그 꼭대기에 비둘기 한 마리가 보였다. 김밥을 하나 던져 주었더니 놀라서 날아가 버렸다. 비둘기와 내가 의사소통이 거꾸로 된 것이었다.

 

대남문에서 산성매표소 방향으로 내려왔다. 5.5킬로미터다. 내려오는 길이 아주 좋았다. 가파르지도 않고 돌도 많지 않고, 편안한 길이다. 3.5킬로미터 정도 내려오니 그때 부터는 계곡에 유원지가 많이 들어서 있었다. 중간에 식당도 많고, 사람들이 술과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런 구경을 하면서 내려오니 심심하지 않아 좋았다.

 

멋있게 생긴 바위들도 많이 구경할 수 있었다. 버스가 다니는 큰 길까지 걸어서 내려왔다. 그리고 택시를 탔다. 불광역까지 가서 3호선 전철을 탔다. 종로3가역에서 내려 광장시장까지 갔다. 처음 가보는 광장시장 안에는 먹걸이가 많았다. 사람들도 무척 많았다. 재미있었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잠 못이루는 밤  (0) 2005.11.07
작은 행복한 시간들  (0) 2005.11.06
시차 적응기간  (0) 2005.11.05
뉴욕에서 보내는 가을편지 [4]  (0) 2005.11.04
뉴욕에서 보내는 가을편지 [3]  (0) 2005.11.0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