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오늘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루는 날이다. 수 많은 수험생들이 초조한 마음으로 긴장하고 시험을 볼 것이다.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그들이 차분하게 그 동안 쌓아온 실력을 발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황우석 교수가 배아줄기세포 연구과정에서 자신의 연구실 여성 연구원으로부터 채취한 난자를 사용했다는 증거가 포착됐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난자 제공 등에 대한 구체적인 규제법규가 없는 상황에서 윤리적 판단 문제가 어려운 현실이다. 황 교수의 연구에 지장이 있을까 걱정된다.
이수일 국정원 전 차장의 자살 파문이 크다. 그리고 이건희 회장의 딸 사망도 안타까운 소식이다.
쌀협상 비준안 국회 상정에 반대하는 농민들이 전국 곳곳에서 여이삭을 쌓아놓고 불을 지르는 소각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전 세계 에이즈 감염자가 처음으로 4000만명을 돌파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유엔 기구들이 밝혔다고 한다. 에이즈는 1981년 첫 발병한 이래 지금까지 2500만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무서운 질병이다.
지난 토요일 오전 비행기로 오사카에 갔다. 모처럼 다시 가 보는 칸사이(關西)공항이다. 예전에 내가 묵었던 공항에 붙어 있는 니꼬호텔이 보였다. 공항에는 김 선생과 전 선생이 나와 있었다. 반가웠다. 시내로 들어가 몇 시간 회의를 했다. 통역으로 나온 신 선생이 아주 통역을 잘 한다. 그러나 언어장애 때문에 통역을 두고 회의를 하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몇배의 시간이 걸리게 된다.
저녁 식사는 복집에서 했다. 복요리가 맛이 있었다. 저녁 식사 후 '행복'스낵에서 술을 마셨다. 분위기 때문에 술을 많이 마셨다. 일본의 스낵(snack)이라는 형태의 주점이 값이 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별 것 아닌데 나중에 보니 5만엔이나 된다도 했다.
달이 밝았다. 호텔 창밖에 달이 높이 떠 있었다. 서울에서 보던 달과는 많이 달랐다. 내 감정이 이입되어서 그런 것이다. 쓸쓸함이 더욱 짙게 배어 있었다. 인생의 허전함도 달에서 묻어 나왔다. 달은 거울처럼 내 삶의 슬픔을 보여주고 있었다.
프레지던트 호텔은 비교적 깨끗했다. 김 회장과 김 부회장이 와서 여러 사람이 풍년식당으로 갔다.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는데 특별히 부탁해서 아침 식사 준비를 했다고 한다. 주인 아주머니의 음식 솜씨가 좋다. 김치찌개를 잘 끓여 놓았다. 준비한 밥이 부족하자 어디 가서 바로 한 그릇을 사왔다.
삭사 후에 2층 방으로 가서 또 회의를 했다. 다다미방인에 앉아 있어 보니 편하다. 점심 때는 코리아타운에 갔다.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라는 간판이 재미있게 보였다. 코리아타운은 길게 200여미터 정도 늘어서 있었다. 관음사라는 절이 부근에 있었다. 점심 식사는 어느 스시집에 가서 했다. 일본 경기도 불황인데 그 스시집에는 손님들이 많았다. 사천왕사를 구경했다. 백제 시대의 왕인이 건너가 세운 절이라고 한다.
오사카의 가을은 아직 계속되고 있었다. 날씨가 춥지 않다. 서울에서 입고 간 코트는 입을 수가 없었다. 약간 선선한 우리나라 초가을 날씨다. 사천왕사는 시내에 있는데 비교적 큰 사찰이다. 낙태한 사람들이 태어나지 못한 태아를 위해 기원하는 곳이 있어 관심을 가지고 보았다. 어느 스님이 줄을 당겨 종을 계속 치면서 불경을 외우고, 젊은 두 남녀가 뒤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렇다. 낙태는 중대한 죄악이다. 태아도 생명이 있는데, 그 생명을 무참하게 끊어 버리니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공항까지 김 회장과 김 선생, 전 선생이 배웅을 나왔다. 전 선생은 계속해서 운전도 하고, 안내도 해주었다. 헤어질 때 서운했다. 그들의 성의가 너무 고마웠다. 김 회장은 재일교포지만, 일본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한국말을 잘 못한다. 열심히 일만 해서 손을 보여주는데 고생한 표가 났다.
오사카에서 인천공항은 비행시간이 1시간 30분 정도다. 그래서 그런지 비지니스 클래스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가까운 거리가 굳이 비지니스 클래스를 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단체관광 손님들도 많아 보였다. 저녁 7시에 탄 비행기는 인천공항에 9시에 도착했다. 캄캄했다. 공항에서 서울로 나오는 길이 유난히 정겨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