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분명 그 주인공이 있다. 굳이 드라마를 보지 않더라도, 어느 무대라는 공간에는 특정한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되고,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지금 이 시간 뉴욕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일도 중요하지만, 서울에서 일어나고 있는 내 주변의 일들은 더 중요하고, 직접적으로 내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모든 일을 직접 느끼며, 긴장하거나 행복해 한다. 때론 눈물을 짓는다.
주변에 가까운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일은 내게 간접적인 고통으로 다가온다. 때로는 살다보면 나도 마음이 약해지고, 자신감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말없는 고통을 받기도 한다. 몸이 아프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한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가끔은 놀랄만한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철렁 가라앉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가 살아가는 건, 삶에 대한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의지(意志)에 의지(依持)하면서, 우리는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때론 견디기 어려운 시련에 빠지기도 하고, 악한 사람을 만나 고생도 하지만, 그래도 살아남는 건 익숙해진 삶의 경험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위하고, 아래를 바라보면서 위에서 받은 초라함을 달래기도 하는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우리는 밑에서부터 위를 보고 올라가고 있는 배낭을 맨 등산객이다. 그래도 올라갈 때가 내려갈 때보다 보람있고 낫다.
어제 김대리, 임대리의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루 종일 많은 상념에 젖었다. 갑자기 떠난 직원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퇴근시간 무렵에 안 법무관을 만났다. 벌써 1년이 넘어 공주 근무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왔다고 한다. 세월이 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와인을 마셨다. 달콤한 일본산 와인이다. 터미널 부근으로 가려고 택시를 탔는데, 타자 마자 출발하려고 하면서 어떤 보행자를 가볍게 치었다. 기사가 당황해서 그런지 곧바로 서지를 못하고, 약간 차를 앞으로 진행시키고, 여자 피해자는 땅에 넘어졌다. 복잡한 도로상에서 택시를 정차시키고, 피해자는 땅에 그대로 누워있고, 112신고를 했다.
10분 정도 지나서 119 구급차가 왔다. 경찰 순찰차는 20분이 지나서야 나타났다. 나와 일행은 교통사고 목격자로서 함께 사고 수습을 했다. 다행이 피해자가 크게 다치지 않은 것 같았다. 사고를 내고 안절부절하는 몸이 마른 택시기사와 갑자기 사고를 당해 땅에 누워있는 피해자 모두 불쌍해 보였다.
정말 교통사고란 순식간에 이루어지고 어어 하다보면 사고가 나는 것이다. 조심을 해야 하는데, 역시 자동차란 위험한 물건이라른 생각이 든다.
기분이 그래 약속을 취소하려고 했으나, 함께 만나기로 한 사람이 미리 와 있다고 해서 아는 수 없이 터미널로 가서 청록에 들어갔다. 맥주를 한잔 하기로 했던 것이다. 휘황찬란한 조명 아래 음악이 좋았다. 젊은 디제이들과 그룹사운드, 가수들 모두 신선하고 좋았다.
그곳에서는 새벽 4시까지 영업을 한다고 한다. 모처럼 놀러온 사람들이 분위기를 즐기지만,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수많은 종업원들은 매일 똑 같은 분위기 속에서 공기도 좋지 않고, 담배연기를 마시며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얼마나 힘이 들고 스트레스를 받을지 생각해 보았다.
12시쯤 되어 밖으로 나오니 공기가 참 시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