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강물, 그리고 나


                                                        가을사랑


하루를 돌이켜 보면, 한 것이 많은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한 일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


어제는 4월 12일, 그러니까 2006년도 한 해도 벌써 100일이 넘었다. 세월이 어찌 이렇게도 빠른지 모르겠다. 아침에는 택시를 타고 출근을 했다. 운전을 하면 괜찮은데, 택시를 타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오히려 답답하고 시간이 안 간다.


음악이나 라디오 채널로 내 마음대로 들을 수 없어 그런지도 모르고, 낯선 사람과 밀폐된 공간에 오래 함께 있는 것도 별로 내키는 일은 아니다. 눈을 감고 가만히 있으니 약간 졸음은 오는데 그렇다고 깊게 잠이 들 환경도 아니다. 밖을 보니 아침 일과가 시작되는 도시의 번화함과 분주함이 느껴졌다.


김 회장님을 만났다. 곧 조사를 받으러 간다고 한다. 관행적인 문제에 대한 엄격한 법적용은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사회적 체면 때문에 이중삼중으로 정신적 고통을 받게 된다.


혼자 느끼는 정신적 공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위로를 해야 할지? 이런 저런 방안을 상의했다. 나름대로 많은 방안을 생각했을 거라고 믿었다. 몇 달 동안 받은 정신적 고통은 법적 책임 이상으로 가혹해 보였다.


점심 시간에 일행과 함께 서초정육점식당에 갔다. 정육점에 딸린 고기집이다. 예전에 자주 다녔는데, 참 오래만에 가보았다. 손님들이 예전과 달리 별로 많지 않았다.


이 국장으로부터 필요한 조치를 취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것 저것 검토할 사항이 많은 것이어서 오후에 바빴다.


어떤 분이 갑자기 찾아와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의 추천을 받았다면서, 상담을 했다. 법률구조공단에서 도움을 받으려고 하니, 절차를 밟는데 한달 가까이 걸린다고 해서 나를 찾아왔다고 한다. 복잡한 사건 때문에 민형사 소송을 혼자 하고 있다고 했다. 사건 설명을 장시간 들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5시에 부동산회의를 했다. 횡성에서 전원주택사업을 하는 사장님이 참석했다. 6시에 회의를 마치고 나니, 김 사장님이 지방에서 올라오신 분과 함께 방문을 했다. 억울한 사정을 듣다 보니 7시가 다 되었다. 세상에는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미사리 경정장 뒤편 둑방으로 갔다. 내가 잘 다니는 곳인데, 이번에는 참 오랜만이다. 왕복 7킬로미터의 산책로다. 헐레벌떡마라톤 동호회에서 마라톤 연습을 하는 코스이기도 하다. 마라톤 동호회 이름을 재미나게 지어 놓아 잘 잊어버리지도 않는다.


둑방에 가로등을 켜놓아 저녁 산책하기가 좋다. 시원한 강바람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다. 가슴 속에 한강의 시원한 4월의 바람을 마음껏 집어 넣었다. 바람은 들어가고 들어가도 끝이 없다.


조용한 강변을 걸으며, 나는 아주 깊고 깊은 상념에 잠겼다. 달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가끔은 구름에 가려 잊혀지기도 했다. 달은 나를 따라 오기도 하고,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 가기도 했다.


나는 달을 사랑하려고 했고, 달도 나를 사랑하려고 했다. 나는 달을 잊고 있기도 했고, 달도 나라는 존재를 잊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서로를 잇고 있는 사랑의 끈은 보이지 않았지만, 변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달이었고, 달은 나였다. 두 존재는 겹쳐 있었고, 떨어져 있었다. 강물은 조용히 달과 나를 비추고 있었다. 두 사람의 교감을 듣고 있었다. 그러면서 흐름을 멈추고 있었다. 라일락이 피는 4월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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