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박스 커피 한잔


                                                           가을사랑



날씨가 흐리다.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은데, 하늘은 잿빛이다. 마음이 가라앉고, 갑자기 센치해진다. 날씨 탓이다. 연약한 인간이 자연을 따라 순응해 살아가는 지혜인지 모른다.


화사한 햋볕을 받아야 빛이 날텐데, 날씨가 흐려서 그런지 올림픽대로변의 개나리와 철쭉도 우울해 보였다.


라디오에서는 김덕룡 의원과 박성범 의원이 지방선거 공천과 관련하여 수억원을 받았다는 혐의로 한나라당에서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는 뉴스로 떠들썩했다.


사실 여부는 수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국회의원들의 처신이 왜 그렇게 변하지 못하는 지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말로는 모든 의식이 개혁되어야 한다고 그렇게 외치는 사람들이 겉 다르고 속이 다른 말과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안타깝다.


아침에 집에서 7시 40분경에 출발했다. 약간 일찍 출근을 하니, 길에서 고등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서초동에 오니 시간이 너무 빨랐다.


그래서 반포에 있는 스타박스에 들어갔다. 아메리칸 커피를 한잔 시켜 놓고 허영 교수의 헌법소송법론을 읽었다. 아무도 없는 이른 시간에 혼자서 조용히 앉아 책을 읽고 있으니, 그 또한 기분이 좋았다. 나 혼자만의 작은 행복이었다. 창밖을 보니 출근에 바쁜 차들이 많이 늘어서 있었다.


교대역 11번 출구 앞에 동냥을 구하는 사람이 길바닥에 앉아 있었다. 잠시 차가 신호등에 걸려 서 있는 동안 유심히 그 사람을 살펴 보았다. 평소 자주 보는 사람인데, 지나가는 사람에게 손을 들어 동냥을 구한다. 한 10여명이 지나가는데 아무도 돈을 주지 않았다.


어떤 심정일까? 어려운 처지에 손을 내밀고 있는데, 무표정한 표정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이 어떨까? 차가운 길바닥에 앉아 있으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서 그래도 힘있는 사람들의 동정을 받으려는 마음이 짓밟힌다고 생각할 때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렇다고 그 사람이 돈을 주지 않는 사람들을 모두 원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별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니까. 지나치는 사람들의 표정도 자세히 보니, 별 관심이 없다는 표정이다. 세상은 이렇게 냉정하게 움직이고 있다.


출근하니 서울구치소에서 수감중인 피고인 한 사람이 자신의 재판과정에서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편지를 내게 보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내가 쓴 책, ‘이렇게 하면 빨리 석방된다’를 구치소 안에서 보고, 자신의 사건에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범죄유발형 함정수사를 당해 징역을 살고 있다는 내용이다. 가슴이 뭉쿨하다. 세상에는 억울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법과 제도가 억울한 사람을 많이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읽은 성경구절이 마음에 와 닿는다.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 눈이 가리워져서 보지 못하며, 그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라’(이사야 44:18).


눈이 떠 있어도 가리워진 상태에서는 한 치 앞에 있는 사물이나 현상도 인식하지 못한다. 모든 것을 정확하게 볼 수 있도록 눈을 크게 떠야 한다.


눈을 감고 있거나, 무엇에 가리워지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다. 그러면 우매하고 어리석게 되고, 일을 저지르게 된다. 나중에 후회할 일을 만들게 된다. 마음이 어두워지면 안 된다. 마음이 부질 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혼탁하면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한다.


눈 앞을 가로 막고 있는 욕망과, 마음을 어둡게 하고 있는 나쁜 생각을 버리고, 제대로 알고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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