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공원
가을사랑
가까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게 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자주 볼 수 있는 게 있다.
인생이란 자신이 만들어가는 작품이다. 혼자 길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가만히 있으면, 인생은 물 속에 잠기는 물체가 되고 만다.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발버둥쳐야 물 위로 떠오르게 되고, 밝은 세상이 보인다. 인생은 끝없는 고행이다. 외로운 바다의 항해다.
봄꽃이 한창이라는 말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마음 먹고 밖으로 나왔다. 차를 타고 서울대공원으로 갔다. 도착하니 11시 반이 되었다. 입장권을 사는 데도 줄이 길어 시간이 많이 걸렸다. 동물원과 장미원을 구경할 수 있는 패키지 입장권이 어른 한 사람에 3,600원이다.
봄날 공원에 바람을 쐬러 온 사람들은 그래도 순수한 사람들이다. 세상 별 욕심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욕망에 가득찬 사람들은 오늘도 집에 틀어박혀 있거나, 골프라운딩을 하고 있거나, 호텔 커피숍에서 열심히 사람들과 무언가 상의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욕망이라는 괴물을 더욱 커다란 욕망으로 인도해 나아가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욕망은 더 멀리 앞으로 나가서, 더 빨리 따라 오라고 손짓하게 된다. 그 손짓에 발걸음을 재촉하게 되면 결국 파멸이라는 심연의 못에 빠지게 된다. 헤어나지도 못하고,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것으로 믿고 살다가 허망함의 종착역에 이른다.
주차장에서 동물원 입구까지 가는 길에는 벚꽃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하얗게 피어있는 벚꽃은 눈부시게 봄을 장식하고 있었다. 하얀 눈꽃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오늘이 가장 피크가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인지 많은 상춘객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예전에 과천에 살던 때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내가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1987년이었다. 법무부에서 근무하면서, 직장 가까운 곳에서 생활한다고 과천 주공아파트를 전세로 얻었다. 과천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한동안 서울을 잊고 살았다.
새벽에 청계산 등산을 다니고, 헬스클럽에도 다녔다. 점심은 대개 청사 앞에 있는 식당가에서 했다. 점심시간에도 사람들과 어울려 차를 운전하고 나왔다. 밤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에서 야근할 때가 많았다.
늦게까지 일을 열심히 하고 밖에 나오면 별이 보였다. 과천은 서울보다 공기가 맑아서 그랬던 것 같다. 지금은 밤이 어떨지 잘 모르겠다. 점심 식사를 한 후 법무부 건물 뒷편으로 약간 산책도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참 행복했던 것 같다.
그때는 막상 과천에 살고 있으니, 가까이 있는 서울대공원에 자주 오게 되지 않았다. 한 3년 가까이 과천에서 살면서 서울대공원에는 10번도 안 갔을 것 같다. 아니 그 보다 더 적게 갔던 것 같기도 하다. 대공원은 갈수록 잘 꾸며놓아 이제는 완전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동물원을 지나니, 인공포육장이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잃어버린 경우와 같이 대부분의 야생동물과는 달리 어미 손에서 자라지 못하는 새끼들을 모아 기르는 곳으로 동물의 고아원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그곳에서 본 어린 새끼 원숭이 세 마리가 아주 귀여웠다. 너무 귀여워서 두 번이나 들어가 보았다.
그곳을 지나 산림욕장으로 갔다. 산림욕장은 6.3킬로미터의 산책코스다. 총 4개의 구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11개의 테마코스가 아주 잘 꾸며져 있었다. 정말 권하고 싶은 코스였다. 새로 나온 새잎들은 정말 색깔도 고왔고, 예뼜다. 새잎과 갈잎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가까이 있어도 보지 못한 곳이었다. 이런 곳이 서울에 있다니,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것이 이상했다.
내려와서 공작을 보았다. 하얀색의 공작이 날개를 완전히 펴고 서 있는 모습은 정말 대단했다. 걷는 모습도 기품이 있었다. 왜 공작이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알았다. 난생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공작은 일반 닭과는 정말 달랐다. 태생이 다른 것이었다. 기린은 키가 6미터나 되고, 하루에 불과 20여분밖에 잠을 자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았다.
하루 종일 대공원 동물원에서 많은 동물들을 보았다. 사람과 동물의 차이는 무엇일까? 무엇 때문에 동물과 달리 사람이라고 구별되는 것일까? 나는 곰곰히 생각에 빠져 대공원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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