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정 교수의 방문이 있었다.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점심식사를 같이 했다. 신 교수와 이 변호사가 함께 참석했다. 연금이야기를 많이 했다. 생명법학연구회 논의도 했다. 정 교수는 참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이다.
4월 말에 실시한 헌법재판론 중간고사 채점을 했다. 의외로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여러 명 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가르키는 보람을 느꼈다. 사실 내심으로는 성적들이 안 좋으면 어떻게 할까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성적들이 좋았다. 그동안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조는 사람이 없이, 모두 열심히 들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중간고사를 실시한 직후 학생들에게 보낸 이메일이다]
헌법재판론 강의를 듣는 학생 여러분께!
학교 캠퍼스의 봄꽃 향기 속에서 학업에 정진하고 있는 여러분들은 무척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힘이 들어도 먼 훗날 대학 시절은 아주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지난 4월 24일 월요일 있었던 중간고사는 모두 잘 치뤘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직 채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어느 정도 정확하게 정답을 선택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은, 시험은 시험이므로 아는 것도 틀릴 수도 있고, 모르는 문제도 맞출 수 있는 것입니다. 기말고사가 있기 때문에 혹시 잘못 본 경우라도 너무 실망하지 말고 분발하기 바랍니다.
[향후 강의 관련]
다음 주인 5월 1일(월) 강의시간에는 이미 배포한 경희헌법 2006-4, 175쪽부터 시작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경희헌법 2006-5[제8강좌 내지 제10강좌/ 권한쟁의심판,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을 교재로 강의할 것입니다.
이번에 새로 경희헌법 2006-5를 이메일로 보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법대 행정실에도 종전과 같이 이메일로 보내놓을테니 필요한 학생은 복사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월요일 만나도록 하겠습니다.
환절기에 건강 조심하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어느 의원을 만났다.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아 눈코뜰 새 없이 바쁜 모양이다. 오랜만이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다 보니 7시가 되었다.
낮에 어떤 사람을 만났더니 세상 살기가 힘들다고 난리다. 세상 사람들이 전부 싫어진다고 했다. 그는 사람이 싫은 이유를 여러 가지로 설명했다. 모든 사람들이 너무 이기적이고, 다른 사람들을 이용만 하려고 들고, 순수하게 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회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이해관계가 없어지면 서로 연락도 하지 않고, 불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아무 상관도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잘 해주려고 할 필요도 없고, 점차 인간에게는 실망만 느낄뿐이라고 했다.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게 사회생활이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인지 모른다. 특히 요새와 같은 물질만능의 사회, 인구가 많아진 사회에서는 더욱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자기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으면,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고 않고, 그럴만한 여유도 없이 살아간다.
말초적인 자극이나 재미에 급급하고, 자신의 건강과 취미, 재테크에만 열성을 쏟고 살아가는지 모른다. 그래서 모두들 허망하게 느끼고 권태에 빠지고, 삶에 회의를 느끼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람이다. 사람 속에서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사랑하면서 서로 의지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너나 할 것 없이 외로운 존재다.
따지고 보면 다 연약하고 불쌍한 존재다. 원죄를 타고나 누구나 죄를 짓고 살아간다. 겉으로는 안 그런척 해도 속에는 다 부질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면서 지낸다. 현실적인 욕구불만, 자괴감, 초라함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때론 사람에게 실망을 느끼기도 하지만, 때론 사랑을 느끼고 행복을 느낀다. 정을 느끼고 의리를 인식하기도 한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사람들의 소박한 삶이다.
사람이 싫어지면 그것도 힘든 일이다. 어차피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려면 좋든 싫든 이해하고 살아야지 모두 못마땅하다고 생각하면 본인은 더 살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싫어지면 분명 자신의 삶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사실을 의미하며, 위험하다는 징조다. 그건 사람들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일 수 있고, 자신이 부족하고 똑 같이 다른 사람에게 실망을 줄 수 있는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태생적 한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아니면, 남과 자신은 다르다는 교만의 결과일 수 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서 실망을 느끼듯이,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수 없이 많은 실망을 주고 살아왔을 것이다. 내가 주었던 실망은 무엇인지 제대로 깨닫기 어렵다. 자기합리화에 빠져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비난도 무조건 방어해서 회피하려고 하는 잘못된 심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실망을 느끼듯이 내가 다른 사람에게 실망을 주는지 깊이 반성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