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전화


                                                           가을사랑


2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는 방수 씨(38세, 가명)는 괜찮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부인도 있고, 어린 자녀도 있었다. 부모님들도 모두 계셨다. 큰 돈은 없었지만, 몸도 건강했고, 특별한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그냥 그렇게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 여건이었다. 서울의 소시민이었다.


삶의 권태이었을까? 딱 하니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때로 묘한 상황에서 이상한 심리상태에 빠질 때가 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절대로 그런 일을 하지 않는 데, 특수한 환경에서 자칫 잘못하면 매우 비정상적인 일을 하게 된다. 일반 사람들은 상식적인 잣대로 그러한 비정상적인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강력하게 비난하게 된다. 그게 사회 현실이다.


방수 씨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가는 길에 있는 의상실 가게 주인이 아주 예쁘고 매력있는 것을 보았다. 한번 대화를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무슨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의상실에는 샵의 전화번호가 밖에 적혀 있었다.


그래서 공중전화박스로 가서 의상실에 전화를 했다. 처음에는 이런 저런 문의를 하는 것처럼 대화를 하다가, 장난기가 발동해서 음란패설을 이야기했다. 성적인 발언을 계속했다. 상대 여자는 전화를 끊었다. 방수 씨는 연 이어 몇 차례 전화를 했다.


그 다음 날 퇴근 길에 방수 씨는 또 의상실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이가 50살은 넘어 보였지만, 전화대화였기 때문에 나이차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자는 짜증을 냈다. 그러나 일방적이기는 하였지만 상대방이 여자고, 대화내용이 성적인 것이었으므로 묘한 감정이 일었다.


삭막하고 답답한 도시에서 한 개체로서의 실존이 느끼는 허망함, 초라함, 권태로움 같은 것에서 잠시라도 일탈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매일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한달 동안 20여 차례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은 이제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그 음담패설을 받아주는 것은 전혀 아니었고, 귀찮으니까 이제 그만해라, 그렇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 지금 녹음하고 있다라는 식의 경고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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