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가을사랑
“김 이사, 이번 추석 명절 때 공무원들에게 인사를 해야 하니, 5천만원만 만들어 주시오.”
“어느 자금으로 만들까요?”
“그건 김 이사가 알아서 적당히 만드세요.”
“예, 알았습니다. 사장님.”
김 이사(가명)는 회사에서 경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사장의 지시에 따라 비자금을 만들어야 하는데, 뇌물을 줄 자금을 공식적으로는 만들 수 없습니다. 장부에 공무원에게 지급한다고 기재할 수가 없고, 지출명목도 없기 때문입니다. 김 이사는 하는 수 없이 하도급업체에 지급할 공사대금에 5천만원을 더 얹어 지급한 다음 다시 돌려받았습니다.
비자금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비밀리에 축적한 자금을 뜻합니다. 비밀자금 또는 비공식적인 자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자금은 현금으로 비밀리에 보관해 두거나, 차명계좌에 입금시켜 놓습니다. 사무실 벽에 대형금고를 비밀리에 설치해 놓고 거액의 현금을 보관시키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비자금을 보관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보호예수라는 은행 보관제도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보호예수란 은행이 고객의 양도성예금증서(CD)나 채권 등 귀중품을 은행 현금금고 등에 개인 명의로 보관해 주는 제도를 말합니다.
그러면 비자금은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요? 원래 회사에서는 매출이 발생하면 모든 금액을 장부에 기재해야 하고, 비용도 실제 지출한 금액만을 반영해야 합니다.
그런데, 매출액 중에서 일부만 장부에 수입으로 잡고, 나머지 금액은 기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출하지 않은 경비를 지출한 것처럼 기재하거나, 금액을 과다하게 기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건설회사의 경우 하도급업체에 지급할 대금에 가공의 금액을 포함시켜 지출한 다음, 하도급업체로부터 일부 금액을 되돌려 받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해외에 자회사를 만들어놓고 물품수입대금 명목으로 송금한 후 빼돌리기도 합니다.
보통은 대표이사가 경리담당 직원등과 공모하여, 내부용 장부(비밀장부)와 세무신고용 장부를 이중으로 비치 기장하면서 세무신고용 장부에는 실제의 매출액을 누락시키거나 가공의 비용을 계상하고, 내부용 장부에는 가지급금 등의 명목으로 회사의 수익금을 인출하여 타인계좌나 가명계좌에 예치함으로써 개인자금(비자금)을 조성하게 됩니다.
비자금의 조성행위는 결국, 회사에 입금이 되어야 할 자금이 중간에 빠져버린다는 의미에서 회사에 대한 업무상횡령죄가 성립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내야 할 법인세 등 세금을 탈세하는 것이므로 조세포탈죄도 성립하게 됩니다.
법인세는 법인의 소득에 대하여 과세하는 조세, 즉 법인소득세이고, 법인세의 과세표준이 되는 소득은 각 사업연도를 단위로 계산하는 것이므로,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로써 특정 사업연도의 법인세를 포탈하였다고 하기 위해서는 당해 사업연도의 익금을 누락 또는 과소계상하거나 가공손금을 계상 또는 과다계상함으로써 그 사업연도의 소득금액을 줄이는 부정한 행위를 하고 나아가 무신고 또는 과소신고한 경우여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입니다(대법원 2005. 1. 14. 2002도5411).
이와 같이 조성된 비자금은, 첫째로 회사 임직원이 개인용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회사 소유인 자금을 보관하는 임직원이 개인적으로 사용하였으므로 업무상횡령죄가 성립합니다. 비자금의 금액이 커서 5억원 이상이 넘으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죄에 해당하게 되어 가중처벌됩니다.
법인이 매출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출액을 장부에 기재하지 아니하거나 가공의 비용을 장부에 계상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매출누락액 또는 가공비용 상당의 법인의 수익은 사외로 유출된 것으로 보아야 하며, 이 경우 그 매출누락액 등의 전액이 사외로 유출된 것이 아니라고 볼 특별한 사정은 이를 주장하는 법인측에서 입증할 필요가 있고(대법원 1986. 9. 9.선고 85누556판결), 법인의 대표이사 등이 그의 지위를 이용하여 법인의 수익을 사외로 유출시켜 자신에게 확정적으로 귀속시켰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러한 소득은 대표이사에 대한 상여 내지 이와 유사한 임시적 급여로서 근로소득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대법원의 판례입니다(대법원 1997. 12. 26. 선고 97누4456판결 참조).
대표이사등이 조성한 비자금이 회사의 장부상 일반자금 속에 은닉되어 있었다 하더라고 이는 당해 비자금의 소유자인 회사 이외의 제3자가 이를 발견하기 곤란하게 하기 위한 장부상의 분식에 불과하여 그것만으로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입니다(대법원 1999. 9. 17. 99도2889판결참조).
둘째, 비자금을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에 대해 뇌물 또는 불법정치자금으로 제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처럼 비자금을 만들어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에게 주는 경우에는 뇌물공여죄, 정치자금법위반죄 등의 범죄가 별도로 성립됩니다.
이런 이유로 검찰에서는 기업체를 수사하면서 비자금조성사실이 포착되면, 그 비자금이라는 검은 돈의 사용처를 면밀하게 추적하는 수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비자금의 추적은 대개 은행계좌추적을 통해 하지만, 거액의 현금이 움직였을 경우 회계담당자 등을 추궁하여 현금의 흐름을 밝혀내기도 합니다.
그동안 많은 기업들이 비자금조성과 경영권 승계문제로 발목이 잡혀 있는 상황입니다. 두산그룹 비자금사건, 현대차 비자금사건 등에서 보듯이 대기업들의 경영상 잘못된 관행이 최근 들어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비자금조성으로 인해 기업은 부실화되고, 기업체 임직원들이 비자금을 이용해서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주고, 정치인들에게 불법정치자금을 주는 것은 결국 정경유착의 불법고리가 계속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비자금은 조성해서도 안 되고, 불법적인 용도에 사용해서도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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