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맞고 남산을 걸었다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 9명이 모여 점심식사를 했다. 워낙 친한 사람들이라 아무런 격의 없이 편하게 많은 대화를 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며 유머스러운 이야기들을 했다. 그러다 보면 1시간이 짧다.
식사시간이 끝나면 각자가 바쁜 사람들이라 사무실로 돌아가야 한다. 식당 주인아주머니도 우리 팀이 가면 아주 친절하게 잘 해준다. 오늘은 색다른 김치를 한포기 가져다가 썰어주었다. 맛이 좋았다. 그 성의도 고마웠고. 서초동에는 수많은 식당이 있지만 내가 가는 식당은 서너군데 밖에 안된다. 다니는 곳만 계속 가게 되는 것이다. 아는 곳이란 그래서 좋은 것이다.
사무실에 출근하면 식사시간을 빼고는 하루 종일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정신 없이 일을 하다 보니 밖에는 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퇴근하고 청계산 등산을 조금 하려고 했는데 못하게 되었다. 잠시 시간을 내서 창밖을 바라다 보았다. 이제 봄비라고는 할 수 없다. 초여름에 내리는 비다. 비 내리는 밖을 보면서 나는 또 상념에 빠졌다.
우리 사무실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답답한 사연들이 있다. 분쟁 때문에 골치가 아프고, 심각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나도 하루 종일 심각하거나 진지할 수밖에 없다. 그들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해야 하니까. 세상에는 억울한 일도 많고, 나쁜 사람들 때문에 손해를 보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법이라는 것이 그렇게 명백하게 모든 것을 가려줄 수 있는 만능의 도구도 아니다. 그래서 답답하다.
일을 마치고 남산에 갔다. 요새는 해가 길어서 꽤나 늦게까지 환하다. 6시경에는 비가 그치고 개기 시작했다. 구름은 많았지만 비는 그쳤다. 운동도 할 겸 남산공원으로 갔다.
남산공원 분수대 앞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남산타워까지 올라갔다. 계단을 계속 오르니 땀이 조금 나면서 운동이 많이 되었다. 남산타워는 전면적인 수리공사를 하고 있어 문을 닫아놓고 있었다. 금년 11월말까지 공사를 한다고 써붙여 놓았다.
남산타워에서 걸어서 국립극장 있는 곳까지 가서 다시 남산공원분수대 옆 주차장까지 갔다. 중간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차있는 곳까지 가려면 비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우산도 없고 택시도 없는 곳이다. 중간에 2킬리미터 정도를 완전히 비를 맞고 걸었다.
모처럼 비를 맞았다. 좋은 추억거리가 하나 생긴 것이다. 서쪽에는 해가 벌겋게 남아있는데 남산에는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비를 맞으면 남산 순환도로를 걸은 오늘은 오래 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살면서 자꾸 이런 특별한 이벤트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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