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영화관에서 코를 골다가 망신을 당한 대학 교수

 

그 다음 날 신문을 보니 강 교수의 눈에 이런 기사가 들어왔다. ‘어떤 공무원이 직장 동료와 불륜을 맺었다는 혐의로 직장에서 파면되었다. 법원에서는 직장 내의 불륜행위가 사적인 영역을 벗어나 공무원의 업무수행에 영향을 줬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간통죄가 위헌으로 선언된 이상 이는 윤리위반의 문제일 뿐, 더 이상 형사처벌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위 정도가 약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해당 공무원에 대한 파면처분은 비위행위 정도에 비해 과중해서 위법하다는 판결을 선고했다.’

 

강 교수는 이 기사를 보고 정말 명판결이라고 쾌재를 불렀다. 판결을 한 판사는 시대정신을 정확하게 꿰뚫고있는 현명한 사람이며, 불륜을 한 공무원을 파면처분한 행정청의 담당자들은 구태의연한 성윤리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심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시대가 얼마나 달라졌는데, 공무원이 불륜을 했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도덕과 윤리문제이지, 법으로 공무원을 파면시키면 되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강 교수는 바쁜 와중에도 그 판사에게 감사의 편지를 정성껏 작성해서 발송했다. 물론 자신의 신분은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본명이 아닌 가명을 사용했다.

 

편의상 강 교수는 자신의 이름을 정성교라고 했다. ‘성교’라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할지 몰라서, 성교를 한글로 쓰지 않고, ‘聖橋’라고 썼다. ‘saint bridge'라는 의미였다.

 

아무튼 강 교수는 사랑과 섹스에 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연구심과 학구열이 높았다. 그러다 보니 정작 자신이 강의하는 과목에 대한 연구는 할 시간이 없었고, 강의 시간에도 불필요한 잡담이나 많이 했다.

 

강 교수는 학생들에게는 절대로 성에 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강의에 꼭 필요해서 불가피하게 성적인 이야기를 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잘 못하는 독일어로 했다. 성기를 말해야 하는 경우에는 라틴어로 했다. 그래서 다른 교수들이 강의 도중 말을 잘못해서 학생들에게 성희롱으로 대자보에 이름이 올라가거나 me too 운동 때 파면되고 감방에 가는 경우에도 강 교수는 성에 관해 아주 초연한 모범적인 교수로 학내외에서 칭송이 자자했다.

 

강 교수는 워낙 인물이 좋았고, 정치나 사회문제, 기타 학교 재단의 비리, 사회적 위선자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가감 없이 했고, 벤츠 스포츠카를 뚜껑 열리는 것을 타고 다녔고, 이태리 명품 옷이나 가방, 선글래스, 시계 등을 차고 다녔기 때문에 일부 머리가 빈 학생들 사이에서는 명 교수라고 인기가 좋았다.

 

특히 학교 앞에서 원룸을 얻어 남학생과 여학생이 share를 하면서 동거를 하고 지속적인 성관계를 아무 부담없이 하고 있는 학생들은 강 교수를 대부(godfather)로 부르면서 극도의 존경심을 표했다.

 

학생들이 강 교수를 대부라고 부르는 것을 몰래 알게 된 강 교수는 그 다음부터는 영화 대부의 주인공 비토 콜레오네 역을 맡았던 영화 배우 말론 브란도의 흉내를 내고 다녔다. 그랬더니 강 교수의 인기는 천정을 뚫고 창공까지 날아갈 정도였다.

 

이런 기이한 현상을 보고 그 대학교의 다른 교수들도 강 교수의 성공사례를 모방하여, 어떤 여교수는 마릴린 몬로, 남자 교수는 파바로티 흉내를 냈지만, 기본적으로 바탕 얼굴과 체형이 뒷받침되지 못해 모두 실패했고, 학생들로부터 오히려 저질 교수라는 대자보가 붙기도 했다. 그 교수들 모두 사실상 강 교수 때문에 빚게 된 참사로서 실질적인 피해자였다.

 

다시 강 교수의 젊은 시절로 돌아가 보자. 강 교수는 결혼하고 나서 언젠가부터 한국 영화는 절대로 보지 않았다. 그런데 부인 정혜가 한국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같이 영화관에 가자고 조르는 바람에 같이 간 적이 있다.

 

영화가 너무 재미가 없어서 강 교수는 시작할 때부터 ‘The End’ 자막이 나올 때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도중에 영화에서 주인공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 주인공과 성관계를 하고 골아떨어져 코를 고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마침 강 교수가 주인공과 비슷한 소리로 코를 골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정혜를 비롯한 관객들은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코를 고는 소리로 알고 있다가 주인공이 일어나서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으로 바뀌었는데도 강 교수는 계속 똑 같은 강도로 코를 골고 있었다. 강 교수 주변의 관객들은 영화스피커가 고장난 것으로 잘못 알았다.

 

강 교수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탄 오토바이가 언덕을 올라가기 위해 엑셀레이터를 세게 밟아서 부르릉 소리가 크게 날 때를 맞취서 방구를 세게 뀌었다. 이때는 영화 스피커소리와 똑 같아서 별 문제가 없었다.

 

“아니! 주인공이 코를 골던 장면은 끝나고, 주인공은 오토바이를 타고 범인을 추격하고 있는데 왜 스피커에서는 코를 고는 소리가 계속 나느냐? 엉터리 영화다!”라고 소리를 쳤다.

 

그 소리에 강 교수는 잠에서 깨었다. 강 교수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순간적으로 알아차리고 더 큰 소리로 항의를 했다. “맞아요. 엉터리 영화다. 돈을 환불해주세요.”

 

옆에 있던 정혜의 얼굴이 빨개졌다. 정혜는 속으로, ‘이런 사기꾼 같은 인간이 내 남편이라니, 정말 한심하다. 코를 골았으면 빨리 코골이수술을 해서 코를 골지 말아야지, 어떻게 지가 잘못해놓고 죄 없는 영화관에게 바가지를 씌우려고 하냐?’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정혜는 남편인 강 교수에게 물어보았다.

 

“정말 당신이 코를 곤 걸 몰랐어요?”

“무슨 말이야?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다 보고 있었는데. 내 바로 앞에 앉아있던 그 머리 하얀 남자가 코를 골아서 그런 문제가 생겼던 것 같아.”

 

이런 식으로 한국 영화를 싫어하니, 강 교수는 영화를 보아도 주인공 이름은 하나도 알 수 없고, 그들이 극중에서 하는 말이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스토리도 뻔하고, 대사도 유치했다. 그걸 진지하게 잠시도 한눈 팔지 않고, 재미 있고, 철학적 의미가 있다고 보고 있는 정혜를 비롯한 젊은 남녀 쌍쌍의 모습을 보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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