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리 카페촌

 

                                                                                         가을사랑

 

 

 

가을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가을 달이 가을을 찾아 나섰다. 밤새 찾았지만 가을은 보이지 않았다. 은행나무 가지에도 없었고, 풀벌레 우는 풀밭에도 없었다. 가을은 강물 속에 숨어 있었다. 가을 달은 끝내 가을을 찾지 못한 채 산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카페 ROME 의 간판이 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밤이 되면서 미사리 카페촌은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있었다. 추억의 거리에서 서글픈 추억들이 떠올랐다. 은행잎이 떨어지던 마로니에 광장에서 젊은이들은 생맥주와 함께 눈물을 뿌렸다. 그건 가을의 슬픔이고 운명이었다. 

 

산다는 건 시간과 함께 오랜 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매일 매일 달에 일기를 써놓는 일이었다. 달은 한 없이 깊어 그 무수한 사연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저장해 놓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달은 우리의 과거를 모두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미사리 카페촌에 가면 마치 30년 전의 명동거리를 걷는 느낌을 준다. 그 옛날 들었던 노래들, 그 노래를 부르고 있는 가수들을 보면 시간은 멈춰있는 것 같고, 사람은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 정지해 있을 수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윤시내 씨의 열애를 들으며, 사랑에 담겨 있는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엔 마음을 스치며 지나가는 타인처럼 흩어지는 바람인 줄 알았는데, 앉으나 서나 끊임 없이 솟아나는 그대 향한 그리움' (윤시내/ 열애)

 

그건 바람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민들레 꽃씨처럼 어디선가 날라와 조용히 앉는다. 그게 뿌리를 내릴 사랑의 씨앗인지, 그냥 스쳐 지나가는 타인의 바람인 줄 아무도 모른다. 운명은 단지 예감할 뿐이다. 운명은 명확하게 인식할 수 없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그대는 내 가슴 속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세월이 흘러도, 아무리 가을바람이 불어와도 점점 그리움은 쌓여가고, 바람에 흩어지지 않는 그 무엇인 것을...

 

그대의 그림자를 밟으며 따라간 세월 속에 어느듯 나는 그대 가슴 속에 진주로 변해 자리잡게 되었다. 아니 내 가슴 속에 그대가 찬란한 진주로 뿌리를 내렸다. 그 진주는 가을 밤에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찬란한 사랑의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서로의 가슴 속에서 불꽃을 피울 것이었다. 사랑의 불꽃의 열기가 미사리 전체를 뒤엎고 있었다. 가을 달밤에 사랑과 사랑이 포옹하고 있었다. 안개 속에서 그 뜨거운 포옹은 계절을 초월한 채 밤을 새우고 있었다.

 

사랑은 아무리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법이다. 평생 수양을 했던 스님의 몸은 영롱한 사리를 남기지만, 사랑했던 사람들의 발자취 뒤에는 영롱한 진주가 남는다. 그 사랑의 진주들이 강물 위에서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가을 달은 그 진주들에 반사되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미사리에는 그런 사랑의 금자탑이 세워지고 있었다.

 

미사리 둑방길에 늘어서 있는 가로등 불빛이 안개 속에 뿌옇게 보였다. 강물은 아무런 말 없이 흐르고 있었다. 사랑을 찾는 사람들,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 그리고 사랑 없이도 마음 편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똑 같은 자리에서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물은 가을을 품 안에 숨겨 놓고 있었다.   

 


주제 : "미사리 ‘라디오스타’ 추억 속으로 떠나다" [미디어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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