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무척 깊어졌다. 한동안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가을이 오는 기쁨에 들떠 있었는데, 벌써 가을이 저만치 가고 있다. 가을이 떠나면 나 혼자 남아 긴 겨울을 지내야 한다. 눈 내리는 겨울밤에는 가을에게 편지를 쓸 생각이다. 가을이 남기고 간 노란 추억들을 곱게 써서 가을이 떠난 서쪽 산너머로 보내야겠다.
마음을 깨끗하게 비우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찾아보고 싶다. 아름다운 마음씨들이 눈에 띈다. 남을 아껴주는 작은 정성들이 은행잎처럼 돌담길에 떨어져 있었다. 그 정성에 눈물이 났다.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살아 있다는 건, 내 마음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부딛혀 존재를 느끼게 하는 일이다. 삶이란 그 자체로서 존재의미가 있는 것이다. 내 삶은 내가 느끼는 것일뿐, 다른 사람의 인식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다.
감기로 인해 머릿속이 맑지 못해 약간 답답했지만, 그래도 늦가을 높은 하늘을 보니 내가 살아 있고, 나와 연관된 다른 삶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