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사랑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날씨는 무척 쌀쌀해졌지만, 아직도 나는 가을이라고 믿고 있다. 겨울이 와도 가을이라고 생각할 지 모른다. 가을과 겨울의 차이를 나는 모르고 있다.
오후 2시쯤 집을 나섰다. 일산가구단지로 갔다. 필요한 가구를 보기 위해 전에 갔던 점포들을 다시 둘러 보았다. 일산에는 대형 가구단지를 조성해 놓았다. 가구를 전시해 놓기 위해서는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문방구 가게와는 전혀 다르다. 그 엄청난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침대와 식탁, 쇼파, 책상 등을 보여주기 위한 장소가 어느 정도 되어야 하는지는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대번 알 수 있는 일이다. 불경기 탓인지 일산가구점에는 손님들이 많지 않았다. 가게마다 손님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가구값을 전혀 알지 못하는 손님 입장에서는 매장에 가격표시를 해놓은 것을 보고 가격 흥정을 한다. 가격 흥정을 한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상인의 입장을 이해한다면 값을 무작정 깍을 일도 아니다. 그 사람들도 점포를 얻고 시설을 하고, 직원들 인건비, 세금 등을 감안하면 충분한 이익을 남겨야 현상유지가 되고 영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손님의 입장에서는 가격표시가 많이 깍을 것을 전제로 과대표시되어 있다면 제대로 깍지 못하고 비싸게 사면 억울하고 바보가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게임법칙이다. 서로가 머리를 써서 게임을 하는 일이다. 바보처럼 굴면 비싸게 사고, 약게 굴면 싸게 살 수 있는 게임이다.
그런데 그런 게임을 하는 일이 어쩐지 피곤하고 부질 없는 일처럼 생각이 되었다. 가격 흥정 하는 일을 포기했다. 상인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어주기로 했다. 구입할 가구를 결정했다.
해는 져서 어두워지고 있었다. 하늘에 아름다운 색깔의 구름들이 마치 산처럼 보였다. 어쩌면 저렇게 신비스러운 모습을 할 수 있을까? 그건 자연이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연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구름으로써 그림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연약한 인간은 자연 앞에서 무릅을 꿇어야 한다. 겸허해져야 한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작은 세포 하나가 잘못 되어도 생명을 잃어야 하는 존재다.
아무리 잘난 척 해도 80세가 넘으면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 떠나지 않고 있어도 항상 떠날 준비를 해야 하는 불쌍한 존재다. 그걸 무시하고 천년을 살겠다고 버티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추하게 보인다. 남들처럼 살아야 하지 않을까? 혼자 잘 났다고, 몇 백년을 살겠다고 우기고 있으면 어쩌겠다는 말인가?
차가 무척 막혔다. 불경기라고 하고, 나라가 어수선하다고 하면서, 개인적으로는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자가용을 끌고 나와 도로를 막히게 하고 있는 현실이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지만, 어쩐지 불합리해 보인다. 말과 행동이 모두 다르고, 남을 비난하는데는 모든 재능을 다 발휘하면서,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무척 둔감한 현실이 안타깝다.
나의 모든 약점과 단점을 되새겨 보는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생각해 본다. 가을은 저만치 나를 버리고 외로운 길을 떠나고 있었다. 나도 가을을 따라 먼 길을 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내가 가을이고, 가을은 나이기 때문이다. 가을이 울고 내가 또 울고 있다. 밤은 깊어가고, 가을도 깊어간다. 나도 깊숙이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떨구고 싶은 시간이다. 토요일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