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사랑
사법시험제도를 폐지하고 로스쿨제도를 도입하려는 정부의 방침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물로 로스쿨제도에 대해서는 찬반 양론이 팽팽하다. 로스쿨제도는 나름대로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로스쿨제도를 도입하던 하지 않던 그것은 이차적인 문제다. 정부에서는 사법시험을 폐지하고 로스쿨제도를 시행하겠다고 공표해 놓았다. 그리고 시행일정을 잡아놓고 추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그러다 보니 엄청난 혼란을 가져왔다. 당장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수험생들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정부에서 왜 그렇게 졸속으로 먼저 발표를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국회에서 법안이 제대로 통과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보다 더 신중한 태도를 취했어야 하지 않을까? 각 대학교는 나름대로 로스쿨법안 통과에 대비해서 막대한 예산을 들여 교원을 충당하고, 시설을 확충했다. 엄청난 투자가 낭비된 셈이다.
대학교에서 경쟁적으로 로스쿨을 유치하기 위해 투자한 것은 어차피 법학교육을 위해 투자한 셈 치고 다른 방법으로 효과적으로 사용하면 된다고 해도, 학생들의 경우 갈팡질팡하고 있다. 심리적으로 대단히 불안한 상태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법대에 다니면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게 만드는 것인가?
수 많은 젊은 학생들을 이처럼 혼란에 빠뜨린 책임은 누군가 져야 한다. 아무튼 로스쿨제도의 도입과 시행 여부는 가부간에 빨리 결론을 내려줘야 한다. 장기과제로 넘길 것이면 그렇게 하고, 단기간에 시행할 것 같으면 또 빨리 시행일정을 잡아줘야 한다.
그리고 로스쿨도입이 결론이 날 때까지 현행 사법시험제도의 폐단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 많은 대학생들이 정상적인 법학교육을 받지 못하고 사법시험에 매달려 있다. 신림동 고시촌에서의 기술적인 시험대응법을 배워 합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게 기술적으로 배운 법률지식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지 걱정스럽다.
도대체 사법시험제도의 폐해를 개선한다고 말로만 그렇고 실제로 개선된 것이 무엇인지 공개적으로 점검해 본 적이 있는가? 내가 볼 때는 아무 것도 개선된 것은 없는 것 같다. 출제경향이 약간 달라졌을 뿐이다.
현행 사법시험제도는 지나치게 수험생들에게 부담을 주고 있는 제도다. 사법시험제도의 목적과 취지가 어디에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볼 일이다. 법조인 자격을 염두에 두고 시험을 치루는 것인지도 분명히 해야 한다.
당장 법조인 양성을 위한 시험에 영어토익점수가 700점 이상을 받아야 시험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외국어는 어디까지나 외국어일 뿐이다. 대부분의 법조인들은 일단 법조인이 되면 실무에 있어서 영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굳이 영어가 필요한 법조분야에서 종사할 사람들은 나름대로 별도로 공부를 하면 된다. 영어는 고등학교 졸업때까지 한 외국어공부로 일단 충분하다고 본다. 외국에서 법조인자격시험을 보면서 외국어를 필수조건으로 하고 있는 나라가 있는지 궁금하다.
국가적으로 이런 불필요한 제도를 사법시험에 도입함으로써 수 많은 학생들이 영어공부에 엄청난 시간을 쏟고 있다. 그렇게 공부한 영어실력으로 법조생활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어차피 영어로 법조실무를 하려면 다시 제대로 영어공부를 해야 한다. 그게 현실이다. 수험생들은 시험합격을 목표로 그 범위 내에서만 공부할 수 있을 뿐이다.
법이론과 판례를 혼합해서 출제하는 이유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종래 이론과 학설 위주로 출제했던 경향을 바꾸어 판례 위주로 출제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수험생의 입장에서는 종래 공부했던 이론과 학설, 판례 모두를 공부해야 하는 부담만 가중되었다. 그리고 출제방식도 단순하지 않고 매우 기교적이고 복잡해졌다.
때문에 수험생들은 그 방법에 대응하기 위해 더 많은 참고서적과 문제집을 사서 보아야 한다. 또한 판례도 계속해서 양산되는 모든 판례를 출제대상으로 하고 있다. 심지어 헌법재판소 결정도 모두 공부해야 한다. 도대체 짧은 수험기간에 어디까지 공부를 해야 할지 모르게 된다. 출제범위를 줄이던지 적어도 명확하게 해 주어야 한다. 수험생들보고 알아서 하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부담을 준다.
무엇을 위한 시험인가? 수험생들을 골탕 먹이기 위한 시험은 아니지 않은가? 작년 사법시험 3차에서는 적절치 않은 질문을 했다고 해서 시비가 있었다. 금년도 사법시험 1차에서는 시험을 앞두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법무부가 출제방식에 대해 과거와 달리 하겠다는 발표를 해서 또 시비가 있었다.
사법시험은 결론적으로 어디까지나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 경쟁자들간에 상대평가를 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시험이다. 사법시험의 출제방식이 달라졌다고 해서 법학교육이 정상화 된다거나, 수험생들의 법률지식과 법적 논리적 사고능력이 크게 개선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수험생들에게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지 않고도 합리적인 방법으로 우열을 가릴 수 있는 상대평가제도를 연구할 수도 있다. 수험생들의 입장에서는 예측가능성이 중요하다. 법적 안정성이 요청되는 이유는 수험생들에게 쓸데없는 시간낭비를 하지 않도록 베려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