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와 욕망(Wings & Desire) 


가을사랑



오후에 광진구 능동에 있는 어린이대공원으로 갔다. 차를 주차하기가 어려워 멀리 떨어져 있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택시를 타고 공원에 들어갔다. 공원입구는 대로변에 바로 붙어 있어 그런지 한적한 분위기를 느끼기 어려웠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어느 정도 안으로 들어가니 도심 속에 있는 공원이었고, 숲도 있었다.


동물원에는 독수리가 몇 마리 있었다. 독수리가 있는 곳은 비교적 넓고 높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독수리를 날지 못했다. 날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날갯짓을 했지만 결국 나는 데는 실패했다. 안타깝게 보였다. 그 큰 날개를 가지고 날지 못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다른 새들처럼 날개가 크지나 말았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날지 못하는 독수리는 이미 독수리가 아니었다. 힘든 날갯짓에 스스로 눌려버리고, 자신감을 상실한 존재였다.


날지 못하는 상태에서 날고 싶은 욕망을 가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불행이다. 불행은 날지 못하는 곳에서 잉태된다. 잉태된 욕망은 충족되지 못한 채 새장 안에서 소멸되기를 기다려야했다. 또 다른 시도는 더욱 깊은 좌절감을 안겨줄 것이었다.


독수리는 차라리 어두워지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자신의 욕망을 잃어버리고 자신은 그 욕망과 아무 상관이 없음을 증명하려고 할지 모른다. 욕망은 날개에 뿌리를 가지고 있었고, 날개는 곧 욕망이었다. 날개 때문에 생겨나는 욕망은 날개가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이었다.


문제는 독수리에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독수리의 날개가 그 무거운 물체를 들어올리기 위해서는 더 큰 부력이 필요한 공간이 있어야 했다. 그 공간을 인간이 통제하고 있었다.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이 독수리의 욕망을 무자비하게 억제했다. 그 수단은 오직 공간의 제한이었다. 시간의 제한이 아니고, 공간만을 제한함으로써 독수리의 욕망은 제한되었다.


옆으로 걷거나 몇 미터 위까지만 올라갈 수 있는 제한은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인간과 독수리는 서로 욕망이 억제된다는 점에서 똑 같았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똑 같이 억제된 욕망 속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음을 불쌍히 여기고 있었다.


언젠가 독수리는 그 잔인한 철창을 뛰쳐나와 외칠 것이다. 인간에 의해 억압되었던 그 시간의 한을 창공에서 외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누군가에 의해 억압되었던 그 시간의 한을 허공에다 외칠 것이다. 창공과 허공은 똑 같이 두 존재의 한을 풀어놓는 공간이었다.


애니스토리라는 공연장으로 갔다. 마법에 걸린 백설공주가 마법에서 풀려나면서 잠에서 깨어나는 스토리였다. 마음이 예뻐야 숲 속에서 가장 예쁘다는 결론으로 끝이 나는 동화를 재미있게 구성해 놓았다. 비둘기, 앵무새, 원숭이, 돼지, 개, 물개 등이 다양하게 출연해 아이들을 재미있게 만들고 있었다.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애니멀 스토리에 빠져들어가고 싶었다.


마음을 잘 다스려야 마음은 편해진다. 욕망을 잘 다스려야 욕망은 통제된다. 밖으로 나와 원숭이와 곰, 물개 들을 보았다. 아이들이 흐르는 물에서 놀고 있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에서 나는 세월의 편지를 읽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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