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사랑(Loneliness & Love)
가을사랑
인간은 외로운 존재다. 스스로 외로워지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 외로움은 인간의 나르시시즘(narcissism)에서 시작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찬 인간은 결국 이기적인 존재가 되고,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하지 못한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다. 아담과 하와가 범한 원죄로 인해 인간은 그렇게 타락했다. 자기만을 위해 살아가는 편협한 존재가 되었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인간은 다른 사람과 넘을 수 없는 벽이 생기게 되었고, 철저하게 고립되었다.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행동으로 일관된 삶에는 다른 사람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혼자만을 위한 생활에서 그는 다른 사람과 관련된 시간과 공간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섣부른 속단을 하고 만다. 모든 것은 당장 자신에게 이익이 되어야 한다. 돈이 벌리거나 출세에 도움이 되거나, 아니면 육체적인 욕망을 채워주거나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흥미를 잃고 관심을 두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결국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서 외롭게 걸어가는 인생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기껏해 봤자 몇 사람의 가족에 파묻혀 만족을 하려고 애쓰지만, 가족이라는 공동체 역시 완전한 것이 아닐뿐더러 서로의 개성을 조화시키기도 어렵고 시간이 가면서 가족관계가 변화하기 때문에 완전한 해결수단이 되지 못한다.
가족에게만 모든 것을 바쳤던 사람들은 때로 커다란 회의와 실망을 맛보기도 한다. 동고동락했던 부부가 쉽게 이혼하고, 자식들 역시 부모로부터 물질적인 도움이나 받으려고 한다. 상속재산을 가지고 형제자매 사이에 소송을 하기도 하고, 형제간에 우애는 별로 없는 가족들도 많다. 오늘날과 같은 물질만능의 분위기 속에서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있는 현실은 가족공동체의 이완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돈에 물들고 세파에 흔들리는 사람들의 본성이 가족이라는 의식만으로 묶여있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질에만 욕망을 두고 모든 것을 바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어느 한 순간에 그 물질의 허망함을 깨닫고 좌절한다. 이성과의 애정에 목숨을 걸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토록 사랑했던 상대방이 영원할 수 없으며, 일시적인 삶의 상황 속에서 이기적인 마음으로 자신을 사랑했던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사랑에 대한 배심감으로 분노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맛보게 되는 인생의 외로움은 그것들을 몰랐던 사람들에 비해 몇십 배 고통스럽고 진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외로움을 극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외로운 상태를 그냥 방치하고 있으면, 우울증에 걸리게 되고, 삶에 회의를 느끼게 되며, 방향감각을 상실할 위험이 있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말씀하셨다(창세기 2:18). 그래서 아담을 위하여 하와를 만드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다(창세기 2:22)” 하나님은 하와를 아담의 성적 상대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기를 원했고, 두 사람은 삶의 동반자가 되기를 원했다.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며 행복을 나누기를 바랬다. 그러면서 또한 자식을 낳아 번창하기를 바랬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레위기 19:18)”성경은 말씀하시고 있다.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고린도전서 13:2)”, “믿음, 소망, 사람,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린도전서 13:13). 성경은 무엇보다도 사랑을 강조하고 있다. 사랑은 자기 보다도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위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뜻한다. 사랑의 밑바닥에는 이기심을 억누르고 이타심을 위에 둔다는 전제가 있다. 이기심에 가득찬 사람은 사랑을 할 수 없다. 사랑을 할 자격이 없고 능력이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이기적인 존재에서 다른 사람까지 배려한다는 이타적인 존재로 변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이 외로운 것은 지나치게 자신만에 집착하고, 자기만을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외로움은 이기심을 버리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심리상태다. 아무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고 혼자 잘 먹고 즐기고 욕정이 움직이는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그 욕망의 한계효용이 감소하게 되면 권태를 느끼고,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며 비참하게 된다.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방향을 잃어버리게 되고, 술과 마약에 빠지거나 난봉꾼이 되기 쉽다. 아니면 사회적으로 위선자가 되어 겉으로는 착한 척 하지만 뒤로는 각종 부도덕한 일을 저지르면서 살아간다.
마음을 열고 좀더 넓은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면 외롭지 않을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가슴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느끼고 진솔한 대화를 할 수 있다면 그는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교만함을 던져 버러야 한다.
사람들에은 누구나 하나님의 신성(神性)을 가지고 있다. 그 사람들 속에 감추어져 있는 신성을 찾아 나의 신성과 결합시키면서 함께 어울리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린도전서 13:4~7)“. 서로의 신성을 발견하고 인간 역사의 초기로 돌아가 아담과 이브처럼 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 품안에서 피조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진실한 사랑은 하나님을 전제로 하나님의 손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다. 하나님을 따르며 연약한 인간 상호간에 의지하고 대화하는 것이 진실한 사랑이다. 그 사랑만이 영원성을 담보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외롭지 않게 살아가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요한일서 3:10~11)" 사랑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교만함을 버리고, 자기만의 유익을 구하지 말아야 한다. 남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한 과정이다.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일 때 나는 더욱 진실된 사랑으로 감싸지며 채워질 것이다.
외로워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이다. 그들은 긴긴 밤을 뒤척이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혼자만의 나르시시즘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혼자 쌓은 성 안에서 어둠과 벗하고 있다. 그 고통은 욥이 잘 표현하고 있다. ”내가 누울 때면 말하기를 언제나 일어날꼬, 언제나 밤이 갈꼬 하면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구나“(욥기 7:4). 욥이 경험했던 불면증은 오늘도 우리들을 괴롭히고 있다. 하나님을 가깝게 느끼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간들은 어두워지면 불안하고 초조하고 고통을 느끼게 된다. 무한광대의 하늘을 생각하면 아무 쓸모없는 하찮은 존재로서 그냥 떠돌아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러다 보면 이기적인 존재는 이 걱정 저 걱정 하면서 불안하고 신경이 떠서 잠을 못이루는 것이다.
우리는 고독과 싸울 문제가 아니라,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고독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사랑을 기꺼이 껴안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인간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요한일서 4:7),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니라(요한일서 4:11),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한일서 4:18,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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