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시장
가을사랑
오후 5시에 부동산회의를 했다. 인 대표님의 농지원부가 나왔다. 모두 축하해 주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농사를 짓는 일을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인 대표님은 이제 진정한 농업인이 된 것이다. 농업인은 하나의 직업이다. 조선시대에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사회체제였기 때문에 농업인은 공업인이나 상업인보다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오늘날 농업인은 지친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자연에 몸과 마음을 위탁하고 여유를 즐기면서 생산을 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회의를 마친 후 8명이 가락시장에 있는 횟집으로 갔다. 우리가 단골로 다니는 곳이다. 회가 싱싱하고 값도 적당하다. 회를 마음껏 먹고 한 사람 앞에 1만5천원 꼴이다. 약간 거리가 멀어서 그렇지만 매우 서민적인 분위기가 물씬 나는 곳이다. 이번에는 주인아저씨가 2층이 아닌 1층에 자리를 잡아 주었다.
감기가 들어 목이 잠겼는데도 불구하고 회식을 하면서 술을 마셨다. 분위기 탓이었다. 감기 때문에 내가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하면 분위기가 어색해질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술을 마셨다. 소주와 맥주를 섞어 4잔 마셨더니 약간 취했다. 그런 상태가 기분좋았다. 술에 취하면 모든 긴장에서 풀어질 수 있고, 옹졸함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그 많은 고민거리와 삶의 무게에서도 해방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모양이다. 식사 후에 우리는 도곡동 매장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커피기계를 구경하였다.
무척 어리석은 일이지만 사람들은 때로 어리석게 살아간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때 그때의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너무 감정을 억제하면서 원칙대로 철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해 보이고, 웅통성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원칙대로 살지 않고 삶의 궤도를 잠시라도 일탈하면 그 후유증은 반드시 감수해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잠을 자고 나니 감기가 심해졌다. 다시 병원에 갔다. 이비인후과와 내과를 두 군데 다녀왔다. 주사도 한 대 맞았다. 그랬더니 조금 좋아졌다. 머리도 아프지 않고, 목도 덜 아팠다. 이제는 감기가 들어도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힘이 들어도 참는 편이다.
콘디션이 조금 좋아졌으므로 오후 3시경 포천으로 갔다. 의정부를 거쳐 포천시청 앞을 지나갔다. 포천버스터미널을 지나 좌회전하면 바로 우측에 있는 철물점에서 낫과 톱, 가위, 장갑을 샀다. 아주 오래 전부터 있던 가게다. 지금은 길이 많이 넓어져서 옛모습과는 달라졌다. 벌초하는 장비는 1만7천원에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그 위로 약간 지나가면 찐빵을 파는 곳이 있었다. 진빵 파는 아주머니의 인상이 참 좋았다. 빵을 데우는 동안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삼정2리로 갔다. 마을회관 앞에 주차할 곳이 있었다. 차를 세워놓고 올라갔다. 할아버지 산소를 벌초했다. 낫을 가지고 풀을 베는데 쉬운 일은 아니다. 땀도 많이 났다. 낫으로 풀을 베면서 나는 생각했다. 왼손으로 풀을 잡고 오른손으로 풀을 벤다. 오른손에 힘을 세게 주면 풀을 잘 베어진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왼손을 벨 위험이 있다. 그런 위험성은 일을 하는 한 계속 있게 된다. 힘의 강도가 높으면 더 크게 왼손이 다칠 위험성이 높아진다. 살살 풀을 베면 안전하기는 하지만 일의 능률은 떨어진다. 모든 일에는 상대적인 위험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변에 잣나무들이 많이 컸다. 6시가 넘으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서 한참동안 서있었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산 속에서 비내리는 시간, 고요를 맛보는 것도 특이한 기분이었다. 모든 생명들이 겸손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소나무와 잣나무, 들풀들, 작은 개울, 비에 젖은 흙, 논과 밭, 멀리 보이는 시골집들, 일부는 불이 켜져 있었다. 나 또한 그 속에 살아있는 존재중의 하나이었으므로 겸손해야 했다. 침묵을 지켜야 했다. 내가 떠들어보았자 들어줄 사람은 없었다. 맑은 공기 때문에 머리속이 맑아졌다. 맑아진 머리속으로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가을바람은 나를 아주 먼 과거의 추억으로 데리고갔다. 나는 가을바람을 따라서 먼곳으로 여행을 했다.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내려왔으므로 옷은 축축해졌지만 나는 기분이 좋았다.
산을 내려오다 보니 전혀 다른 길로 들어서서 삼정1리였다. 내 차를 세워둔 곳까지는 한참을 가야했다. 마침 지나가는 차를 얻어탔다. 그 차는 허브농장을 들러가야 한다고 했다. 허브농장까지 가서 쌀을 내려놓는 작업을 할때까지 기다렸다. 우연히 만나 신세를 진 차주인은 인테리어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곳이 고향이라고 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들판에는 벼가 익어가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것 같아 답답했다. 우리의 가슴 속에 살아있는 욕망이 붙타 소진되지 않고 있는 한 우리는 그럴 것이다. 모든 욕망을 순수라는 이름으로 승화시키지 못한 한 우리는 무엇엔가 억눌려있는 느낌으로 살아갈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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