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은행잎의 외로움

 

가을사랑

 

 

가을비가 촉촉히 내렸다. 떨어진 은행잎이 빗물에 젖어 신음하고 있었다. 젖은 낙엽은 바람이 불어도 날리지 않았다.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둠에 깔리면서 가을은 더욱 외로움에 떨고 있었다. 잎이 다 떨어진 나목(裸木)들이 쓸쓸하게 거리를 지키고 있었다.

 

비에 젖은 바람도 쌀쌀했다. 비는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낙엽과 바람, 그리고 도시의 고독한 삶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가을은 비에 젖어 가로등 불빛 아래 침묵하고 있었다.

 

저녁 식사 후에 하남으로 갔다. 밭에는 무와 배추를 모두 거둬들였다. 채소를 걷어들인 밭에는 허망함이 남아 있었다. 그 풍성한 수확은 있었지만 세월이 남기는 자취란 항상 새로운 무(無)일 뿐이다.

 

하남시 신장전통재래시장에 갔다. 킹크랩 한 마리를 익혀 달라고 부탁을 해놓고 시장을 구경했다. 베트남이라고 영어로 써놓은 간판이 눈에 띄었다. 영어로 훼밀리마트라고 써놓았는데, 베트남 식품점이었다.

 

재래시장의 뒷골목은 아직도 여전한 정취를 지니고 있었다. 옷수선집, 곱창집, 만두집, 포장마차식 식당 들이 줄지어 있었고, 식품을 파는 가게가 많이 있었다. 아주 작은 규모의 가게들이 그 사람들의 생계를 지탱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 큰 돈을 벌기란 애당초 불가능해 보였다. 그냥 먹고 사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환경이었다.

 

시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정치와 기업경제, 국제정세 등은 매우 먼 곳의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었다. 잘은 몰라도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얼마 남지 않는 대통령선거를 둘러싸고 여야 정치인들이 목에 핏줄을 세우면서 서로 싸우는 모습도, 미국에서 송환된 BBK 김경준 대표의 수갑을 수건으로 가린 상태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도, 삼성그룹의 내부비리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의 인터뷰모습도, 모두 먼 나라의 일처럼, 그저 TV에서 보는 다른 연속극이나 연예프로와 똑 같이 다가오지 않을까?

 

나도 그 속에서 똑 같은 생각으로 걷고 있었다. 작은 식당에 들어가서 청하를 한 병 마셨다. 사람들은 소주병을 많이 비어놓고 커다란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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