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오후 드라이브(drive in the winter afternoon)
가을사랑
토요일 오후 2시 반에 워커힐 W 호텔에서 A 사장님을 만나 함께 차를 타고 서종면으로 갔다. A 사장님은 말을 참 재미있게 하는 분이다. 차를 타고 가는 시간 내내 말씀을 하신다. 재미있게 들으며 갔다.
A 사장님은 강이 보이는 낮은 언덕에 집을 지어놓았는데 매우 멋있는 전원주택이었다. 1,500평 땅에 정원을 잘 꾸며 놓았다. 소나무를 많이 심어 놓았다. 큰 소나무 한 그루는 옮기는 과정에서 잘못해서 가지 하나가 부러졌다. 부러진 가지를 방부처리해서 그대로 붙여놓았다. 나무껍질이 없어 이상하긴 했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
A 사장님의 차로 서종면 일대를 드라이브했다. 좋은 계곡을 보았다. 서종면은 산이 많고 경치가 좋아 마치 강원도 같았다. 스위스 알프스 같기도 했다. 많은 전원주택들이 들어서 있었다. A 사장님은 나에게도 서종면에 집을 하나 마련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공기 좋고 경치 좋은 곳에서 사는 것은 좋은 일인데,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높은 고갯마루에 있는 찻집에서 오미자차를 마셨다. 고구마를 불에 구워놓았기에 하나 먹었는데 차가운 겨울 날씨라 그런지 맛이 더했다. 그쪽 산과 계곡에는 눈이 쌓여 있었다. 눈이 내린 산은 포근한 감정으로 다가왔다. 산은 바다와 달리 조용하다. 파도소리에 파묻히게 되는 바다와는 전혀 다르다.
고요 속에 가끔 바람소리만 심란하게 들릴 뿐이다. 때로 날카롭게 들리는 바람소리는 바람에 부딪히는 나뭇잎 때문이다. 어디선가 아주 멀리서 와서 또 아주 먼 곳으로 가는 바람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심오한 이치를 깨우쳐주기도 한다. 바람소리에 귀를 뺏기고 있는 순간에 나는 내 영혼이 정지해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곤 한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바람 같은 존재일 수 있다는 생각은 그 자체로 허망하다. 하지만 곧 나는 현실의 나로 되돌아왔다. 나는 내 몸과 정신의 주인이다. 주인이 넋을 놓고 있으면 안 된다. 서울-춘천 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서종 IC 개통이 예정되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삶의 터를 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니 날이 어두워졌다. 북한강 주변에도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밤에도 강물은 흐르고 있었다. 아주 조용히 흘러 흘러가고 있었다. 어디까지 흘러가는지는 모른다.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고, 어디론가 계속 가야하는 것이 강물의 운명이었다. 마치 내 운명과 같았다.
우리는 뽕잎칼국수집으로 가서 저녁식사를 했다. 만두도 맛이 있었다. 조용한 식당이었다. 한꺼번에 아홉 장이 들어가는 연탄난로를 놓았다. 화력이 대단했다. 나무를 때는 난로를 놓았었는데 식당 안에서는 불편해서 사용할 수 없어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요즘에는 연탄을 어떻게 배달받고 어떻게 갈고, 어떻게 버리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더 이상은 묻지 않기로 했다. 내가 궁금하다고 해서 자꾸 다른 사람들에게 묻는 것은 불필요한 이기심의 발로라고 생각했다.
A 사장님은 오래 전에 천식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갑자기 기도가 줄어들어 숨을 쉬기 곤란한 상태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공기 좋은 곳에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의 신체란 참 오묘한 것이다. 돌아올 때 차가 막히지 않으니 매우 가까운 거리였다.
WABAR에서 생맥주를 두 잔 마셨다. 노가리는 내가 좋아하는 술안주다. 술을 마시면서 세월의 편지를 읽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다. 눈이 내리는 계절에는 눈만 생각하기로 했다. 가을의 단풍과 낙엽을 모두 잊어버리기도 했다.
오직 한곳에 집중해야 순수의 성을 쌓을 수 있다. 아름다움은 분산이 아니라 집중에서 이루어진다. 빛이 강한 이유는 초점이 있기 때문이다. spotlight는 점에서 점으로 옮겨간다.
나는 이 겨울, 눈을 맞고, 눈이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눈사람을 만들 것이다. 눈송이를 손안에 쥐고 손을 호호 불 것이다. 눈을 주시하며, 눈에 사랑을 듬뿍 줄 것이다. 눈에 내 존재를 투영시키고, 눈과 함께 울고 웃을 것이다.
북한강을 끼고 달리던 차는 한강으로 접어들었다. 한강은 북한강이나 남한강과는 다르다. 똑 같은 강물이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한강으로 바뀌고, 이름도 다르고 강의 모습이 달라진다. 팔당대교가 눈에 들어오고 미사리 카페촌의 불빛이 앞에 어른거렸다. 12월의 첫 번째 토요일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