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사람

 

가을사랑

 

 

사람으로 태어나 한 평생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냥 태어난 대로 살면 되지 또 무엇이 필요하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단순한 질문보다는 보다 합리적인 측면에서 올바른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그 무엇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육체를 받아가지고 태어난다. 한 평생 건강한 육체, 질병없는 육체를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육체는 우리의 삶의 기본적인 도구이며 수단이다. 어쩌면 삶 자체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일 수도 있다.

 

육체가 병들거나 약해지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삶의 의미를 찾기가 쉽지 않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건강이며 육체인 사실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몸만 건강하고 힘이 넘친다고 해서 밀림 속의 타잔처럼 살아갈 수만은 없다.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육체만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불행하다. 육체는 그 효용에 있어 한계가 있고, 나이가 들면 어차피 병약해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정신적인 존재다. 정신이 중요하다. 정신이 병들면 육체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정신병은 그래서 무섭다. 정신이 잘못되면 스스로 불속에도 뛰어 들어가게 된다. 육체의 병은 수술을 통해 고칠 수 있지만, 정신의 병은 현대의학에서도 아직은 불치의 병에 속한다.

 

동물은 정신병이 거의 없다. 광견병이 있지만, 매우 예외적인 경우이다. 대개의 동물들은 정신병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드물다. 사람만이 고등동물이며 만물이 영장이기 때문에 고도의 정신체계를 가지고 있고, 나름대로 정신을 집중하고 긴장하며 신경을 많이 쓰기 때문에 정신쳬계가 고장이 나거나 이상하게 될 소지가 많은 것이다. 건전한 정신, 건강한 정신은 삶의 또 다른 중요한 요소다.

 

여기에 인간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았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의 영을 본받은 영을 가지고 있다. 그 영은 인간의 삶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영이 고장나면 영의 세계에서 추방되기 때문이다. 악에 빠지지 않고 사탄과 마귀가 지배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투쟁하면서 움직이고 있다. 영이 작동을 하지 않으면 그 인간은 죽은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영은 절대로 소멸하지 않는다. 비록 육신이 죽어도 영은 살아서 움직인다. 그 영은 하나님의 통제를 받는다. 영의 세계는 인간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 4차원적인 영의 세계를 부정하는 것은 인간의 우매함을 드러낼 뿐이다.

 

어린 아이의 눈에는 단순한 일차원적인 세계밖에 보이지 않지만, 나이가 들면 적어도 3차원의 세계까지는 쉽게 인식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영적으로 눈이 떠지면, 영안이 생기면 그 사람은 3차원을 넘어서 4차원의 세계까지 들어가 볼 수 있고, 예견할 수 있으며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종교란 이러한 4차원의 세계를 논하고 있는 곳이다. 육체적인 죽음을 넘어서 또 다른 무엇이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그런 믿음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일반인들과 다른 선지자들이 이미 체험했고, 그 체험을 전해주는 것이 신앙이고 믿음이다.

 

이와 같이 육체와 정신, 그리고 영혼은 우리 삶의 근본을 형성하고 있는 3대 요소다. 문제는 이와 같은 fundermental을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중요하다. 인간의 3대 구성요소로 형성된 구체적인 사람은 천차만별이다.

 

개별적으로 주어진 육체와 정신을 가지고 영혼이 어떻게 움직이고 살아가며 무엇을 할 것인지는 전혀 그 사람에게 달려 있다. 그 사람의 의지와 노력, 믿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달라진다. 영혼은 믿음과 소망, 사랑을 가지고 그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그 영혼은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 영혼이 타락하지 않고, 영혼답게 사는 것이다. 그 결과는 나중에 절대전능하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 기독교의 원리다. 하나님께서는 아주 공명정대하게 엄격한 심판을 하신다. 그 심판의 기준은 하나님의 법이다. 그 법이 유일하다. 세상 사람들의 기준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세상의 법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영적 세계에서 적용되는 법만이 유일한 기준이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에 이르기 전까지는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충분한 배려를 하신다. 그래서 영혼이 지켜야 할 법을 주셨다.

 

그것이 율법이다. 모세를 통해 인간이 지켜야 할, 인간이 자신을 보호하고 영혼이 구원받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십계명을 주셨다. 모세는 하나님의 십계명을 시내산에서 돌판에 새겨진 명령으로 받았다. 그것을 하나님을 직접 대면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명령이라면서 전해 주었다. 십계명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졌다. 우리는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 

 

그런 율법이 주어졌다고 해서 인간이 그 율법을 다 지킬 수는 없었다. 인간은 원죄를 타고 났을 뿐 아니라 어리석고 사악하고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계속해서 죄를 짓고 타락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의 독생자 예수를 이땅에 보내 마지막 구원의 기회를 주셨다. 예수님은 이땅에 인간의 육신을 가지고 태어났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셨다. 인간들은 그때 비로소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 수 있는지, 죄와 악의 근원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죄에서 구원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예수님은 아무런 죄 없이 인간의 죄를 대신 사함받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 십자가는 인간의 죄에 대한 대속을 의미한다. 모든 인간의 죄가 사망하는 시점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로 인해 인간은 더 이상 율법에 억매여 죄만 짓는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말미암아 죄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생명의 법을 얻게 되었다.

 

인간은 자신의 죄를 십자가에 못박고 다시 부활할 수 있었다. 새사람이 될 수 있었다. 이런 믿음과 소망,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또 다른 요소들이 필요하다. 그것은 지혜와 열정이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지혜가 없으면 안 된다. 지혜롭게 하나님의 소명을 다하는 열정이 없으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혜를 가지고 개인에게 부여된 소명을 열심히 다하기를 바라고 계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지혜가 없으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도 불가능하다. 지혜가 없으면 시간과 에너지만 낭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용만 당한다. 자신의 몸도 보호하지 못하고 가정도 유지하지 못한다. 지혜가 없으면 남자는 여자에게 이용당한다.

 

여자는 남자에게 이용당한다. 지혜가 없으면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친구 따라 강남이나 다닌다. 술이나 마시고, 게임이나 하고, 도박이나 한다. 하루 종일 인터넷에 매달려 아주 좁은 우물안 개구리가 된다. 섹스에 탐닉하고 운동은 하지 않아 병약해진다.

 

지혜가 없으면 어리석어 사기나 당한다. 힘들게 벌어서 한방에 날려 버린다. 주식에 날리고 다른 사람에게 돈을 꾸어주어 사기를 당한다. 부동산사기에 휘말려들고, 다단계사기에 재산을 날린다. 사이비종교단체에 전 재산을 헌금하고 가족들은 생고생을 시킨다. 지혜가 없는 사람들은 주로 구치소에 가 있거나 병원에 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으면 술에 취해 술집에 있거나 대낮에 모텔에 들어가 음란한 짓이나 한다.

 

사도 바울은 경고하고 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고린도전서 15:32~34)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를 가져야 한다. 그 지혜는 그런데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머리를 굴린다고 해서 지혜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쁜 지혜는 없는 것만도 못하다. 지혜는 올바는 지혜, 선한 지혜여야 한다. 그러한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지혜를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으로 생각하고 따라야 한다. 세속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는 지혜는 대개 일을 그르치고, 욕심을 부리는 사람에게 화를 가져온다. 자신은 약다고 행동하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사기를 치는 것이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탈세를 하는 것이고 부정부패에 해당한다. 간통에 해당하고 사기에 해당한다.

 

먼저 하나님께 그 나라와 의를 구한 다음 지혜를 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충고하고 있다.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린도전서 14:20) 우리는 사도 바울의 말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야고보는 지혜에 대해 설명한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찌니라...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야고보서 3:13~18).

 

야고보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지혜에는 위로부터 나오는 지혜가 있고 아래로부터 나오는 지혜가 있다. 아래로부터 나오는 지혜는 세상적이며 정욕적이고 마귀적이다. 그런 지혜는 인간의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지혜, 잔머리쓰는 것을 말한다. 시기라 함은, '타인의 우위, 성공, 재산 등과 관련된 불만이나 탐심의 감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런 얕은 지혜는 더욱 악한 일만 행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로부터 나오는 지혜, 즉 하나님께로부터 얻는 지혜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와 같은 경건한 지혜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야 우리는 하나님께 보다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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