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와 오메가


가을사랑

 


인생이란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단 1회의 시간입니다. 인생이란 자신에게 유일하며 고유한 생명체로서 자기 마음대로 방향을 잡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회입니다.

사람이 태어난 환경은 어쩔 수 없습니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날 수도 있고, 나쁜 환경에서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화가나 조각가가 작품을 만들 때 그 소재로 선택하는 것과 같습니다.

종이를 소재로 할 수도 있고, 찰흙을 소재로 할 수도 있습니다. 일단 선택된 소재를 가지고 나름대로 최선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소재는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것입니다.

그 소재 자체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소재는 이미 우리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므로 그것을 탓하거나 불만을 표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불평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내게 주어진 소재를 가지고 제한된 시간에 어떻게 하면 최선을 다해 최고의 작품을 만들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것은 바로 소재를 주신 하나님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책무요 사명인 것입니다.

인생이라는 작품은 단시간 내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기간 동안 혼자서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중간에 작품을 포기하고 소재를 부셔버릴 수도 있습니다. 자포자기하고 자살함으로써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재를 망가뜨리고 던져버리는 행위와 같습니다.

그래서 자살은 하나님에 대한 중대한 죄악입니다.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하나님의 법을 위반한 범죄입니다. 자살은 하나님께서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아무리 죽고 싶은 충동을 받아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더 이상 견딜 힘이 없어도 자살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주어진 소재 위에서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개별적으로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그 달란트는 다 다릅니다. 그 달란트를 유효적절하게 잘 사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달란트를 그대로 방치하면 녹슬고 말게 됩니다.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음악에 소질이 있는 사람도 가만히 있다가 나이가 60살이 넘어 비로소 시작해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가급적 젊은 나이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달란트가 무엇인지 알아내고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성공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무한정한 축복을 내려주십니다.

조금 성공했다고, 남들보다 나은 재능이 있어 인정을 받았다고 해서 교만에 빠지면 안 됩니다. 교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또한 죄악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내려주셨는데 어찌하여 그것을 자신의 공으로 가로챕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악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권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서로서로 겸손의 옷을 입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능력의 손 아래로 자기를 낮추십시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베드로전서 5:5~6)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교만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배은망덕한 행위입니다. 성직자가 평생을 다 바쳐 전도함으로써 커다란 교회를 세웠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잘 나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더 똑똑하고 더 노력한 많은 성직자들이 교회가 부흥하지 못하고 개척도 되지 않고 사그러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가난하고 불쌍한 성직자에 비하여 커다란 교회를 짓고 수많은 신도들을 모아 훌륭한 사역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담임목사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어 성령을 베풀어주시고 그 성령의 힘으로 때와 장소를 잘 만나 부흥하게 된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그 성직자가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게 되자 교만해지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처럼 대접받으려고 하고 예수님처럼 존경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초호화생활을 하고 거기에 익숙해집니다. 말로는 불쌍한 사람들을 구제한다고 하면서 실제로 자신은 고급 승용차에 고급주책에서 살면서 서울역 노숙자들에게는 가까이 가지 않습니다.

말과 행동이 다릅니다. 이론과 실천이 구별됩니다. 교회에서의 설교와 밖에서의 생활이 전혀 다릅니다. 그것은 어떤 이유에서라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중대한 죄악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들을 비난하기 전에 우리 모두 회개해야 합니다. 그들을 불쌍한 연민의 정으로 이해하더라도 우리 자신은 그렇게 변질되지 않도록 각성해야 합니다. 물질만능풍조에 휩쓸려 살고 싶으면 사업을 해서 돈을 벌어 잘 먹고 잘 살면 됩니다.

타이거 우즈가 새로 구입한 저택은 3백억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초호화판입니다. 세계적인 재벌들의 집은 대개 그런 식입니다.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러나 성직자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돈을 많이 벌어도 검소하게 살아야 할 종교적인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온갖 은혜가 넘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하므로 여러분은 모든 일에 언제나 쓸 것을 넉넉하게 가지게 되어서 온갖 선한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한 바, ‘그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뿌려 주셨으니 그의 의가 영원히 있다’한 것과 같습니다”(고린도후서 9:8~9)

아무리 많은 돈이라도 좋은 일을 하려면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수녀 테레사는 그렇게 살았다고 합니다. 아무리 명성을 얻어도 호화주택에 살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낮은 자리에서 자신을 낮추면서 살다 갔습니다.

“우리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유혹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도 해로운 욕심에 떨어집니다. 이런 것들은 사람을 파멸과 멸망에 빠뜨립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쫓다가, 믿음에서 떠나 헤매기도 하고, 많은 고통을 겪기도 한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디모데전서 6:8~10)”

우리 인생이 세속적인 성공에서 얻는 부와 명성으로 타락하지 않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영혼을 지키는 일이 중요합니다. 좋은 음식이 아니어도, 좋은 저택이 아니어도, 우리는 순수한 영혼을 지키면서 살아가면 행복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자세를 평생 지켜야 나중에 최후의 심판의 날에 염소가 아닌 양으로 판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잠시 사는 동안 물질이 무어라고 그렇게 중요합니다. 먹고 자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다. 재산을 많이 가지고, 쌓아놓았다가 자식에게 물려준다고 무슨 커다란 의미가 있습니까?

나중에 재산상속문제로 분쟁이나 하게 됩니다. 쉽게 받은 재산은 쉽게 날라갑니다. 사기나 당하고 흥청망청 쓰고 맙니다. 우리는 항상 인생을 마쳤을 때 어떤 판단을 받느냐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보아라, 주님께서 수만 명이나 되는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오셨나니, 이것은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고, 모든 불경건한 자들이 저지른 온갖 불경건한 행실과 또 불경건한 죄인들이 주님을 거슬러서 말한 모든 거친 말을 들추어내서 그들을 단죄하시려는 것이다. 이들은 자기 욕심대로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입으로 허풍을 떨다가도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는 남에게 아첨을 합니다.”(유다서 1:14~16).

우리는 오늘부터라도 다시 살아가는 방법을 되새겨보고 정리해야 합니다. 인생을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짧습니다. 짧은 인생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은 결국 세속적인 도덕이나 철학, 사회현상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시키고, 왜곡해서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있다”(베드로전서 1:24~25).

성경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말세에 어려운 때가 올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뽐내며,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며, 절제가없으며,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며, 겉으로는 경건하게 보이나 경건함의 능력을 부인할 것입니다”(디모데후서 3:1~5)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보아라, 내가 곧 가겠다. 나는 각 사람에게 그 행위대로 갚아 주려고 상을 가지고 간다. 나는 알파며 오메가, 곧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시작이며 끝이다. 생명나무에 이르는 권리를 차지하려고, 그리고 성문으로 해서 도성에 들어가려고, 자기 겉옷을 깨끗이 빠는 사람은 복이 있다”(요한계시록 22:12~14).

우리는 마지막에 잘 되어야 합니다. 인생의 끝에 훌륭한 사람으로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아무리 평생 고생을 하고 노력을 했다고 해도 나이 들어 말년에 잘못 생각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교만에 빠지면 망하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우리 모두 회개하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신실하게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인간은 모두 예수님의 발밑에서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자신이 잘났다고 교만해져서 예수님의 발등을 밟으면 안 됩니다. 옷자락이 아닌 예수님의 목을 잡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용납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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