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리자
가을사랑
봄꽃이 만발할 때가 되었다. 오페라극장에 가서 막이 열려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다. 어떤 장면이 우리 앞에 그 웅대한 모습을 드러낼 지 궁금하다. 봄꽃은 인생이 결코 쓸쓸하지만은 않음을 증명한다. 시선을 어디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전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긴 겨울의 여정 끝에 서서 우리는 봄꽃을 보고, 만지고, 그 향기를 가슴에 담으며, 삶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할 시간을 가지게 된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하루 하루는 정해진 일상의 틀에서 굴러가는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출근을 한다. 사무실에서 소정의 일을 하고, 퇴근하고 쉬다가 잠을 잔다.
무엇을 목표로 정해놓고 일을 하고 있지만, 당장 그 목표가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하지만, 그 사랑을 항상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면 한 달이 가고 일 년이 지나간다. 자꾸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무기력해지고, 인생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하고, 활동이 위축된다. 늙는 것에 대한 걱정, 건강에 대한 근심, 생활능력의 저하에 따른 불안감이 지속적으로 늘어간다.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고 현상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권태를 느끼기도 한다.
신앙심을 가지지만, 그 신앙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때가 많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대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이런 저런 일로 번민의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한정된 삶을 방황하거나 허송세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던, 지금부터는 제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억울하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지금까지는 정신을 차리지 않고 그냥 대충 살아왔지만, 이제부터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을 차리지 않고 살다보면, 많은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게 된다. 정신을 차리지 않고 있다가 남에게 이용이나 당하고, 사기를 당해 패가망신하기도 한다. 선하게 살아가는 것과 어리석게 이용을 당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구별하지 않은 채 나쁜 사람들과 어울려 세속적인 일에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되고, 그 과정에서 갖은 죄악만 짓고 만다. 매일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 다니면서 건강도 나빠지고, 사람들과 남의 욕이나 하고, 삶의 진정한 가치를 상실한 채 방황하다 보면 나이만 많이 먹게 된다.
혼자 극단의 이기적인 사고와 행동으로 폐쇄적인 삶의 반경 속에 빠져 있다가 외로움을 느끼고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 욕정의 노예가 되어 섹스에 탐닉하고 바람이나 피다가 추한 인생이 되기도 한다.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지 않고 요행만 바라고 있다가 낙오자가 되어 비참한 환경에 처한다.
지금 이 시간 그래서 조용히 눈을 감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초대 교회의 지도자로 활동했던 사도 베드로는 사람들에게 권면하고 있다.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베드로전서 4:7)"
어떻게 해야 정신을 차리게 되는가? 정신을 차린다는 것은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을 정확하게 돌아보고, 무엇이 올바른 삶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나태하지 않고, 열심히 살되 올바르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혼자 머릿속으로 생각해서는 올바른 해답을 찾기 어렵다. 기도를 통해 그때그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한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쫓으라(베드로전서 3:10~11)"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귀한 선물로 우리에게 주신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사실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상태에서 귀한 목숨을 얻었다. 건강한 신체를 타고 났고, 좋은 두뇌를 선물로 받았다. 그야말로 공짜로 몸과 정신, 영혼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공짜로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받은 선물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불평을 말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그저 감사하게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그 선물을 잘 유지하고 관리하며 그것을 토대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느냐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몸을 잘 다스려야 한다. 마음을 잘 관리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세속적인 유혹에 빠지고, 인간의 육체의 정욕에 이끌려 노예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다.
"영혼을 거슬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制馭)하라(베드로전서 2:1)"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우리가 먹는 것에 욕심을 내고, 그것이 습관이 되어 체중이 불었을 때, 다시 체중을 줄이는 것은 말이 쉽지 결코 간단치 않다. 대개는 그런 상태로 평생을 보내고 만다. 아주 독하게 마음먹고 결심을 하고 노력을 하지 않으면 육체의 정욕을 억누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아름답다(베드로전서 2"19)" 살다 보면 우리는 예상치 못한 시련과 고통을 당하게 된다. 그때 우리는 낙담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주변의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슬픔을 견딜 수 없고, 슬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세상 사람들은 개인의 불행과 슬픔을 위로해주는 것같이 보여도 잠시뿐이고, 곧 자신의 일로 돌아간다. 진정한 위로를 해주는 사람은 없다. 위로를 해준다고 해도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남의 불행을 속으로 고소해하기도 한다. 사람은 그래서 믿을 존재가 되지 못하고, 사람을 믿고 살면 항상 실망하고 서운함 감정을 느끼기를 반복하게 된다.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뜻한 바가 이루어지지 않고 낙담이 될 때 우리는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깊은 뜻을 상고하며 슬픔을 참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최선이며 다른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베드로전서 4:2)"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면 우리는 강하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남은 인생을 강하고, 굳건한 터로 인도하실 것임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베드로전서 5:10)“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마태복음 6:28~29)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한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태복음 7:34)" 아무런 걱정과 근심을 하지 말고, 봄꽃을 보면서 하나님을 바라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