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판사의 주홍글씨 (4)

 

가을사랑

 

때로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하는 가정법을 사용하고 싶을 때가 있다. 아주 우연한 어떤 사건, 어떤 만남, 어떤 사고를 생각하면 그것 때문에 자신의 운명이 180도 달라졌을 때 사람들은 누구가 그런 아쉬움을 가지고 안타까워한다.

 

성추행판사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일만 아니었다면, 곧 다가올 5월에 어린 자녀들과 마음껏 꽃구경도 하고,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에 인간으로서 해야 할 도리를 했을 것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재판업무로 인해 한없는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면서 사회적으로 대우받고, 재미 있개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추락했다. 우리는 한 인간의 추락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보고 있다. 사회적으로 놓이 올라갔다가 순식간에 추락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많다. 대통령까지 올라갔다가 재판을 받고 구속되기도 한다. 장관직을 지내고 뇌물죄로 구속되어 고개를 떨군 채 서울구치소로 가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기기도 한다. 국회의원이나 시장 군수가 구속되는 사례는 너무 많아 커다란 관심거리도 되지 않는다. 잘 나가는 연예인이 차량 절도로 처벌되고, 음주운전죄로 처벌되기도 한다. 수천억원을 가진 재벌이 비자금 때문에 구속되고, 고위 공직자가 여자와의 스캔들 때문에 인구에 회자되기도 한다.

 

이들은 모두 한결 같이 한 순간에 법의 심판을 받아 추락하고, 사회적인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기게 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운명을 주홍글씨로 인해 바뀌게 된다. 평생 떳떳하지 못하고, 자신삼을 가지지 못하고 도덕적인 기준에서 부도덕하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그가 만일 법과 정의, 양심을 주장하면 그는 위선자로 몰리게 된다. 아무도 더 이상 그를 인격자로 생각하지 않게 된다.

 

이런 점에서 사회는 너무 냉정하다. 너무 차갑고 몰인정하다. 자신의 잘못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데, 남의 잘못에 대해서는 고율의 현미경을 들이대면서 날카롭게 따지고 정죄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매우 악한 습성이다. 인간의 역사에 이런 나쁜 습관은 너무 깊이 몸에 배어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사회적 관행이 되었다. 언론을 비롯해서 모든 사람들이 남의 잘못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다. 그의 변명이나 해명을 들을 여유는 조금도 없다. 이번 사건에 있어서도 판사의 변명을 들어볼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일까?

 

혹시 예쁘고 젊은 여자의 뒤를 우연히 쫓아 탄 것이고, 지하철이 혼잡해서 저절로 휩쓸려 몸이 밀착된 것이고, 그것을 의도적으로 멀리 떨어지거나 차단하지 못해 오해를 받은 것은 아닐까? 아니면 경찰관이 갑자기 달라들어 문제를 삼고 당황한 나머지 성추행을 시인했던 것은 아닐까? 여성 피해자 역시 경찰관이 그렇게 설명을 하니까 자신도 그런 피해를 당한 것이라고 약간 과잉해서 생각하고 진술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제 판사에게 주홍글씨는 쓰여졌다. 이제는 지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가슴에 문신을 새긴 사람은 아무리 레이저수술로 문신을 지운다고 해도 흔적은 남는다. 더군다나 이런 주홍글씨는 이미 언론에 의해 전세계적으로 낙인이 쩍혀 있어 예전과 달리 지울 수 없는 것이다. 미국에서의 주홍글씨는 보스톤이라는 한 도시에서 쓰여진 것이지만, 판사에 대한 주홍글씨는 인터넷에 의해 전세계적으로 영원히 기록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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