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대전지방검찰청 강경지청에서 근무하다
이런 경험은 그 후 검사생활을 하면서 국제범죄 전문가로서 일하게 된 기초가 되었다. 서울지검을 떠날 무렵 나는 한미행정협정사건에 대한 연구 논문을 검찰지에 발표하였다.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제시한 논문이었다. 후에 다시 법무부 검찰국 검찰2과 검사로서 SOFA 업무를 담당했을 때에도 서울중앙지검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1985년 3월 대전지방검찰청 강경지청으로 발령을 받았다. 검사로 임관된 후 첫 번째 인사이동이었다. 서울에서 일정 기간 근무하면 원칙적으로 지방으로 순환근무를 하도록 되어 있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2년 6개월 근무했기 때문에 인사 대상이 된 것이다.
발령이 나서 처음에는 논산군 광석면에 있는 시골집에서 생활했다. 옛날에 처가에서 지어놓은 집인데 한옥으로 아주 좋았다. 그곳에서 혼자 지내면서 강경으로 차를 타고 출퇴근했다. 그러다가 강경에서 살 집을 구했다.
전임자가 사용하던 단독주택을 그대로 인수했다. 전세로 들어갔다. 전임자는 연수원 8기인 이상률 검사님이었다. 연수원 1년 선배이고, 대학은 2년 선배다.
강경경찰서 유치장에 바로 붙어 있었다. 2층으로 되어 있었고, 작은 마당도 있었다. 겉에서 보기에는 그럴듯했지만, 안은 너무 엉성했다.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부엌과 마루는 나와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겨울에는 너무 추웠다.
밤에 내가 늦게 들어가면 가족들이 무섭다고 해서 1층에 있는 방 2개 중 한 개를 혼자 사는 직장 여성에게 세를 주었다. 그 때문에 방 1개를 가지고 네 식구가 생활해야 했다. 비좁아서 고생했다. 그렇다고 중간에 세입자를 나가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자동차를 집 앞에 주차시킬 수 없는 것도 불편했다. 차를 집 앞에 세워 놓으면 사람들이 지나다니다가 이것저것 망쳐놓는 것이었다. 그래서 충청은행 주차장에 세워 놓았는데, 그것도 철문을 열고 닫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목욕탕에는 온수기를 설치했다. 도시가스가 아니고 한통씩 사서 설치하는 부엌가스통에 함께 호수로 연결해서 아침마다 틀어야 하는데 가스 냄새도 나고 위험해 보였다. 화경은 강경황산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황산초교는 1945년 12월 10일 개교했고, 강경읍 대흥로 34번길 5에 위치한다.
당시 강경에 살 때 범종은 김범용이 부른 ‘바람 바람 바람’이라는 노래를 잘 불렀다. 가사도 정확하게 외우고, 음정 박자가 잘 맞았다.
강경지청에는 지청장과 검사 1명이 근무했다. 지청장은 김영채 부장검사님이었다. 고향이 포천이었다. 지원장은 윤전 부장판사님이었다. 연수원 동기인 이수형 판사가 있었다. 그 후 윤병구 판사가 후임자로 왔다. 나는 관내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모두 혼자 처리해야했다. 관할은 논산군과 부여군 두 곳이었다. 관할 경찰서도 강경경찰서와 부여경찰서 두 곳이었다.
두 개의 군 관할구역에서 발생하는 모든 형사사건에 대한 수사지휘와 인지사건 수사, 공소유지, 형집행 등의 업무처리를 했다. 그래서 무척 바빴다. 직원들에 대한 감독책임도 있었다. 주말에도 구속영장처리나 급한 업무 때문에 항상 긴장하고 당직실에 연락처를 알려 놓고 있어야 했다. 지금처럼 휴대전화가 없었기 때문에 불편했다.
검찰청에서 집까지 걸어서 5분 정도밖에 안되었기 때문에 생활하기는 아주 편했다. 퇴근하면 특별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시골 생활은 공기도 좋고 조용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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