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대구지방검찰청에서 근무하다
가족이 이사를 해야 했는데 그 일도 쉬운 것은 아니었다. 우선 대구에 아파트를 얻었다. 2년 정도 살 것으로 예상하고 아파트 전세를 얻었다. 1986년 5월 5일 강경에서 이삿짐을 싸서 대구로 출발했다.
어린이날 이사를 했다. 아이들이 있어서 그런지 이삿짐이 8톤 트럭으로 하나 가득되었다. 대구시 수성구 황금동 113번지 경남아파트 9동 403호다. 처음에는 정말 낯이 설었다. 큰 아이는 그곳에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 시켰다.
김동철 검사장님을 모시게 되었다. 나는 특별수사부 수석검사로 배치되었다. 제갈융유 부장검사님은 나중에 대전지검 특별수사부장을 할 때 차장검사님으로 모셨다. 경북고와 서울법대를 나온 분이다.
특별수사부는 특별수사와 공안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다. 지금은 업무가 나누어졌지만, 당시만 해도 대구지검은 특수부에서 두 업무를 모두 담당했다. 내 밑에 세 명의 평검사가 있었다. 두 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정로찬 검사와 이상호 검사였다.
당시 대구고등검찰청에는 김기춘 고등검사장님이 계셨다. 직전에 대구지검장으로 근무하다가 고검장으로 승진했다. 그래서 나는 같은 건물에서 고등검사장으로 모시고 두 달간 근무했다. 대구고검에는 김각영 검사님이 충무지청장으로 있다 옮겨 근무하고 있었다.
김기춘 고검장은 2017년 7월 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을 구형 받았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하고 리스트에 오른 개인 단체에 정부보조금을 부당하게 끊은 혐의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조윤선 전 문화체육부장관에게는 징역 6년이 구형되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최후진술에서, “문체부 공무원에게 사직을 강요한 적도, 블랙리스트 명단을 만들라고 지시한 적도 없다”라고 혐의를 부인했다.
나는 공안업무를 담당했다. 무척 바빴다. 매일 아침 남보다 일찍 출근해서 각 경찰서에서 올라온 공안정보를 챙겨 아침 9시 검사장님이 출근하면, 곧 바로 정보보고를 해야 했다. 주말에도 거의 청사를 떠나지 못했다. 토요일에는 청 내에 있는 테니스장에서 테니스를 치면서 대기했다. 청에서는 코트에 유선전화기를 설치해주었다.
1986년 5월 10일 서울에 올라가 토플시험을 치렀다. 5월 22일 법무부 검찰1과장으로부터 미국 유학검사로 선발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당시 법무부에서는 토플성적 등을 기준으로 해서 해외 유학을 보내는 검사를 선발했다. 미국에 가서 1년간 특정 분야를 연구해서 나중에 돌아와 실무에 필요한 지식을 활용하도록 하는 제도다.
대구지검에 발령 받아 근무를 하던 중 2개월 만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대구지검에서 1986년 5월 6일부터 7월 8일까지 근무했다. 불과 2개월 동안이었지만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미국 유학이 확정되자 급하게 전세 아파트를 빼야 했다. 서둘러 서울로 이사했다. 짐을 부모님 아파트로 옮겨놓고, 가족들은 서울로 보냈다. 나 혼자 20여일을 대구에서 모텔 생활을 했다.
1986년 7월 12일 토요일 오후 7시 10분 KAL 028편 비행기에 올랐다. 부모님과 형제들,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이 김포공항까지 나와 환송해주었다. 출국절차를 마치고 작별인사를 하니 무척 서운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떠나 1년이나 미국에 있을 생각을 하니 죄송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김갑중 사장, 박노환 선배, 김영택 선배, 박노은 사장, 김용철 사장 등이 공항까지 나왔다. 고마웠다. 멀리 논산에서 일부러 올라왔다.
'별이 흐르는 강' 카테고리의 다른 글
38. 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연구하다 (0) | 2018.03.27 |
---|---|
37. Georgetown 대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다 (0) | 2018.03.27 |
35. 논산에서의 생활 (0) | 2018.03.27 |
34. 대전지방검찰청 강경지청에서 근무하다 (0) | 2018.03.27 |
33. 형사4부에서 SOFA 사건을 담당하다 (0) | 2018.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