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법무부 검찰국으로 발령이 나다

 

 

 

당시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법무부로서는 국제테러대책 마련이 시급했고, 국제범죄에 대한 대처가 필요했는데, 내가 미국에서 국제테러리즘을 비롯한 국제형법을 연구했기 때문에 필요했을 수도 있다.

 

법무부는 경기도 과천에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은 과천에 주공아파트를 전세로 얻어 놓으셨다. 내가 한국에 돌아오자 곧 바로 과천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과천에 있는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공무원 생활을 하다 보니 의정부, 파주, 서울, 강경, 대구, 시애틀, 과천 등지를 이사 다니면서 생활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어린 아이들은 친구들과 사귈 수 없고, 자주 바뀌는 환경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법무부 검찰국 검찰제2과에 소속되었다. 검찰제2과는 검찰 업무에 관한 형사정책수립과 일반적인 형사사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곳이었다. 국제형사에 관한 업무도 담당했다. 법무부 내에서 제일 바쁜 곳이 검찰국이었다. 형사정책수립, 기획업무가 주였다.

 

정기국회기간이나 임시국회기간에는 밤 12시 퇴근하는 것이 일쑤였다. 장관을 직접 보좌하여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업무의 중요성이 높았고, 그로 인해 정신적 부담감이 컸다. 그런 과정에서 선배들로부터 많이 배울 수 있었고, 나름대로 식견도 높아졌다. 처음에는 정해창 장관님을 모시고 일을 했다.

 

과천 청사는 공기가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청사 뒤에는 산책을 할 수 있는 숲도 있었다. 과천 아파트에서 조금 나가면 청계산 등산로가 아주 좋았다. 몇몇 동료들과 아침마다 청계산 등산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아침 등산 때도 주로 업무에 관한 토의를 했다. 법무부에 근무하다 보면 자연히 학구적이고 연구하는 태도를 가지게 된다. 정진섭 검사님, 이준보 검사님, 박한철 검사님과 함께 새벽에 청계산을 가볍게 다니는 시간을 가졌다. 아침에 등산을 하고 출근하면 몸이 무척 가벼웠다.

 

2015년 8월 29일 꿈을 꾸었다. 꿈에 내가 검찰2과에서 다시 근무를 하게 된 것이었다. 격에 맞지 않는 인사였지만, 내가 검찰2과에서 꼭 필요하다고 해서 특별히 발령이 난 것이었다. 그러면서 꿈 속에서 많은 검사들을 만났다. 대부분 아는 검사들이었다. 28년이나 지난 세월에 또 다시 긴 시간의 꿈을 꾸는 것은 역시 당시 내가 가장 열심히 근무했던 시간이었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기간이 아니었나 싶다.

 

1987년 8월부터 근무를 시작한 법무부 검찰2과에는 부장검사인 과장 밑에 검사 2명이 있었다. 검찰사무관 한명, 계장 8명, 여직원 한명이 있었다. 이런 인원 가지고 담당하는 업무는 정말 많았다. 업무가 과부하된 상태였다. 그래서 일반 직원들은 검찰2과에 발령받는 것을 싫어했다.

 

처음에는 김유휴 검찰국장님, 백삼기 과장님, 이기배 검사님과 함께 근무했다. 점심 식사 때는 차석검사인 내가 운전을 하고 청사 밖으로 나가 식사를 했다. 그 후에는 윤동민 과장님, 정진섭 검사님과 함께 근무했다.

 

나중에는 송광수 과장님, 천성관 검사님과 함께 근무했다. 송광수 과장님은 나중에 검찰총장을 지냈고, 천성관 검사님도 후에 검찰총장 후보로 내정되기도 했다. 김유후 국장님 후임으로 박종철 국장님이 왔다.

 

나는 미국에서 1년 동안 공부한 국제형법 연구성과를 업무에 반영하려고 애썼다. 1988년 개최될 서울올림픽을 대비해서 법무부에서는 외국과 범죄인인도조약 체결을 추진하고 있었다. 첫번째로 호주와 조약체결을 시도했다. 외무부 담당자들과 함께 조약안을 협의했다.

 

1987년 12월 나는 법무부 실무책임자로 외무부 담당자들과 함께 호주 출장을 떠났다. 외무부에서는 조약담당심의관님과 신연성 서기관님이 함께 갔다. 호주 멜버른에서 양국의 조약안을 가지고 회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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