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제천지청에서 근무하다

 

 

 

1991년 여름이었다. 서울동부지방검찰청에서 같이 근무하는 조동근 수사관 친동생 상가 문상을 가기로 했다. 조 수사관 친동생이 새벽에 집 앞에 있다가 지나가는 차에 치어 세상을 떠났다. 문상을 가는데 주말이라 승용차를 운전하고 가족과 함께 포항으로 향했다. 아는 지인 두 사람도 함께 내려갔다.

 

서울에서 대구를 거쳐 경주 IC로 빠져 나갔다. 경주에서 포항까지 산업도로를 타고 가던 중 갑자기 전방에 나타난 오토바이를 피하려고 급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차가 두 바퀴나 돌면서 도로 중앙에 정지했다. 아무리 핸들을 컨트롤하려고 해도 말을 듣지 않고, 저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는데, 아주 생생하고 무척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차는 다행이 왕복 및 좌우로 다른 차량이 진행하지 않아 그대로 멈추어 섰다. 아무리 시동을 걸려고 해도 걸리지 않는 것이었다. 기어가 드라이브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정차 기어로 해서 시동을 걸어 차를 옆으로 뺐다. 그랬더니 앞서가던 일행 차량이 후진해서 다시 돌아왔다.

 

오토바이는 무단횡단하다가 내 차가 삑 소리를 내면서 돌고 있으니 그냥 가버린 것이었다. 다행이 반대 차선에서 오는 차가 없었기 때문에 아무런 피해는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차를 도로변에 빼놓고 보니 오토바이를 끌고 길을 건너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 때 생각을 하면 정말 아찔하다.

 

1991년 8월 제천지청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기관장으로 일하게 된 것이다. 기관장은 달랐다. 전 직원들이 모인 가운데 취임식을 하고, 취임하자마자 많은 사람들의 방문을 받았다. 해야 할 공식적인 일이 많았다. 외부에 참석해야 할 회의도 많았다.

 

지금까지 수사만 하던 때와는 전혀 달랐다. 검사와 일반 직원들의 업무를 지도 감독하고 결재를 해야 했다. 제천지청은 청주지방검찰청 지청으로서 제천시, 제천군, 단양군을 관할한다. 지청장이 되고 보니 매사에 신경을 써야 했다. 지역에서 눈에 띄는 자리에 있는 관계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 되었다.

 

지청장에게는 단독주택이 관사로 주어졌다. 의림초등학교 옆에 있다. 방이 세 개다. 서울에 가족을 두고 혼자 내려갔다. 간단한 짐을 가지고 관사에서 생활했다.

 

혼자 있으니 식사가 문제되었다. 아침은 토스트를 먹고, 점심 저녁은 주로 밖에서 외식을 했다. 일찍 퇴근해서 관사에 들어오면 썰렁한 기분이 들었다. 객지에 있는 외로움을 무척 탔다. 책을 읽거나 혼자서 사색을 했다.

 

단독주택은 불편하기도 했지만, 방범이 문제였다. 내 바로 앞에 지청장으로 근무했던 고영주 선배님이 있을 때에도 도둑이 들어와서 물건을 훔쳐갔다. 담에 쇠철망을 설치했지만 또 도둑을 맞았다. 나중에는 거실에 있는 큰 창문에 자바라까지 설치했다. 그래서인지 내가 있을 동안에는 더 이상 도둑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김남태 지원장님 관사에 도둑이 들어와 승용차를 훔쳐간 사건이 발생했다. 제천경찰서장이 총력을 다해 수사한 결과 며칠 만에 그 승용차를 찾고 범인을 검거했다. 그랬더니 그 범인 방에서 고영주 선배님 양복도 압수되었다.

 

제천에서 근무하는 동안 나는 지역 사람들과 만나서 제천문화를 발전시키는 운동을 벌였다. 뜻 있는 사람들이 많이 동참했다. 제천시장을 비롯해서 기관장들도 동참했다. 지청장 관사 잔디밭에서 회의도 하고 저녁식사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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