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대전고등검찰청에서 근무하다
주말이면 서울로 올라왔다. 차를 운전하고 다니면서 좋은 경치 구경도 많이 했다. 청주에서 회의를 할 때면 제천 박달재를 넘어 다녔다. 지금은 터널이 뚫려 교통이 좋아졌지만 그 당시에는 험한 산길을 넘어 다녀야 했다. 지청 안에 직원 숙소를 신축하는 공사를 했다. 공사업자 선정하는 문제로 골치가 아팠다.
제천지원에는 김용덕 지원장님이 있었다. 지역에서는 김대성 제천신문사 사장님, 박광동, 한수원 사장님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본청인 청주지검에는 노승행 검사장님 이광수 차장검사님, 김사일 부장검사님, 구본성 부장검사님 등이 근무했다. 특히 기억나는 것은 충주지청 사무과장이 자신의 의붓딸과 그 남자친구에 의해 피살된 사건이었다.
오후에 노승행 검사장님께서 김사일 형사1부장님과 충주에 온다고 해서 함께 현장을 들러보았다. 처음에는 강도살인사건으로 신고가 되었다. 나중에 경찰 조사결과 의붓딸에 의한 살인사건으로 밝혀졌다.
1992년 8월 6일자로 대전고등검찰청 검사로 발령이 났다. 김도언 대전고검장과 차장을 모시고 김대권 선배와 함께 근무를 하게 되었다. 대구고검에는 김종길 검사, 조명원 검사, 광주고검에는 강충식 검사, 고조흥 검사 등이 발령났다.
고등검찰청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유능한 검사들을 고검에 배치한다는 방침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로서는 매우 실망스러운 인사였다. 좋은 보직을 다른 동기생들이 차지하고, 중간급 정도인 고검에 배치된 것이었다.
나는 법무부에서 동기생들보다 6개월 더 근무했다. 서울중앙지검으로 곧 바로 못 들어가고, 동부지청으로 발령받은 것도 불만이었다. 그런데 또 제천지청을 거쳐 대전고검으로 발령을 받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표를 낼까 생각했다.
서울지역에서 근무하다 사표를 내면 몰라도 제천지청을 끝으로 사표를 내고 개업하는 것은 어려워보였다. 당시 검찰1과장은 송광수 과장님이었고, 총장은 정구영 총장님이었다. 법무부장관은 김기춘 장관님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근무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에 대전에 가니 관사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한 달 가량 모텔에서 생활하였다. 모텔 생활은 매우 불편했다. 식사도 그렇고, 짐을 제대로 가져다 놓을 수도 없었다.
개청이 된 후 여러 가지 업무를 맡아 바빴다. 항고사건도 처리해야 하고, 공판에도 관여해야 했다. 김도언 고등검사장님을 모시게 되었다. 차장은 주광일 검사장님이었다. 검사는 나와 김대권 선배 두 사람이었다.
대전고등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생활하기에는 편했다. 심심하지도 않았다. 정장직 화백과 정상철 교수를 만나 맥주를 마셨다. 이재호 교수도 자주 만났다. 친구인 박경식 원장도 만났다. 처음에 관사는 선화동에 있었다. 아파트였다. 이종기 선배가 대전에서 개업을 하고 있었다.
김도언 고검장님을 모시고 퇴근하면 곧 바로 해동검도관으로 가서 검도를 배웠다. 검도는 매우 좋은 운동이다. 운동량도 무척 많다. 열심히 운동한 결과 검도 초단을 땄다. 당시 고검은 지검과 같은 건물을 쓰고 있었다. 선화동에 있었다.
이 무렵 제천에 있을 때부터 써오던 시를 모아서 대문사에서 시집을 출간했다. 제목은 ‘선화동 가을풍경’이다. 대문사는 친구 이형원 사장이 운영하는 출판사였다. 나의 첫 번째 시집이었다. 그리고 경희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틈틈이 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별이 흐르는 강' 카테고리의 다른 글
47. 서부지청에서 근무하다 (0) | 2018.03.27 |
---|---|
46. 대전지방검찰청 특수부장으로 근무하다 (0) | 2018.03.27 |
44. 제천지청에서 근무하다 (0) | 2018.03.27 |
43. 캐나다 출장을 다녀오다 (0) | 2018.03.27 |
42. 서울지검 동부지청에서 근무하다 (0) | 2018.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