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대전지방검찰청 특수부장으로 근무하다
1992년 12월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1993년 3월 대대적인 검찰 인사가 있었다. 고검장으로 모시던 김도언 고검장님이 대검 차장검사로 발령이 났다. 김종구 대전지검장님이 검찰국장이 되었다. 대전고검장에는 이건개 서울지검장님이 오시고, 고검차장에는 심재륜 검사장님이 오셨다. 김대권 선배와 나는 심재륜 고검차장님을 모시고 매일 저녁 식사를 했다.
1993년 3월 나는 대전지방검찰청 특별수사부장검사로 발령을 받았다. 매우 중요한 자리를 맡게 된 것이다. 당시 토착비리를 수사한다고 해서 특별기획수사활동을 벌였다. 검사 4명과 수사관 3명을 데리고 기획수사를 했다. 6개월에 걸친 수사활동에서 많은 수사성과를 거두었다. 황상구 검사장님, 제갈융우 차장님, 고영주 형사1부장님, 이병기 형사2부장님과 함께 근무를 했다. 황상구 검사장님은 1939년생이며, 사법시험 2회 출신이다. 초임을 광주지검에서 시작하고, 경주지청 검사를 거쳐, 나중에 대구고등검사장을 끝으로 1995년 개업하셨다. 황성욱 변호사가 아들이다. 2015년 돌아가셨다.
그 후 나는 대전지방검찰청 형사제1부장검사로 자리를 바꾸었다. 이때 검사장은 김상수 검사장님이었고, 장재 차장검사님, 정진호 형사2부장님, 최태원 특수부장님이었다. 그 자리에서 1년을 보낸 후 1994년 9월 인사 때 대검찰청 환경과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1994년 9월 대검찰청 환경과장으로 발령이 났다. 인사 직전에는 부산지검 특별수사부장검사로 발령이 날 가능성이 있었다. 그동안 3년 동안 제천과 대전에서 혼자 객지생활을 했던 상황이라 지방근무가 너무 고달펐다. 또 다시 지방에서 혼자 생활하는 것은 견디기 어려웠다. 그래서 서울 지역 근무를 희망했다.
대검 청사는 서소문에 있었다. 검찰총장은 김도언 총장님었고, 차장은 송종의 차장검사님이었다. 형사부장은 공영규 검사장님이었다. 형사과장으로는 임승관 검사님이 있었다. 대검 형사부에는 형사과와 환경과가 있었다.
유성수 강력과장님이 함께 근무했다. 강력부에 있는 마약과장에는 문영호 검사님이 있었다. 김도언 총장님은 대전고등검찰청에서 모셨던 분이다. 공영규 검사장님은 그후 상일동 대림빌라로 이사 갔을 때 전부터 그곳에서 살고 계셨다. 나중에 법무법인 광장에서 근무하셨다.
환경과장은 환경범죄와 보건범죄를 전담하는 부서다. 평소에 관심이 있던 환경범죄를 전담하게 되어 매우 기뻤다. 환경범죄에 대한 각종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체계적인 환경범죄 단속방안을 만들기 시작했다.
환경범죄에 대한 철저한 단속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논의하기 위해 환경부 공무원과 많은 회의를 했다. 당시 많은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보건분야와 관련해서는 의약분업 관련 분쟁이 계속되었다.
환경전담검사제를 확립하고, 환경범죄단속방안을 구체화하여 일선 검찰청에 내려 보냈다. 일선에서 단속활동을 하는 환경전담검사와 수시로 연락하면서 단속 상의 문제점을 검토 보완했다. 1년이 지난 다음, 나는 대검 환경과장으로 그대로 유임되었다. 후임 형사부장으로는 김병학 검사장님이 오셨고, 형사과장으로는 전창영 검사님이 왔다. 같은 시기에 대검 강력부에는 박영수 강력과장님, 이병기 마약과장님이 함께 근무했다.
1995년 대검찰청 환경과장으로 근무하면서 미국에 2주간 출장을 다녀왔다. 조선일보에서 환경대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명동 안과에서 라식수술을 받았다. 또한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환경법으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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