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변호사 개업을 하다

 

 

 

그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나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주변 사람들은 대체로 다른 변호사들이 그 동안 해 온 것처럼 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중간 규모로 개업식을 하기로 했고, 개업인사장도 아주 제한된 범위에서 돌리기로 했다.

 

문제는 신문광고였다. 일간지에 적은 분량 1회 광고게재하는 것이 천만원이나 드는 것이었다. 오래 동안 봉급생활을 하던 나로서는 큰 돈이었다. 지금도 비싼 광고비가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당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두 군데에 개업인사광고를 했다.

 

요새는 변호사 개업인사가 예전보다는 많이 줄어든 것 같다. 개업소연도 생략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개업인사장도 다 돌리는 건 아니다. 변호사 업계 환경이 많이 달라져 가고 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도 많이 합리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새로 로펌을 만드는 변호사들과 함께 참여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모든 문제가 쉽지는 않았다. 최종적으로 로펌 대표와 상의해서 단독개업 1년 후에 구성원으로 합류하기로 했다. 그래서 신문광고에도 그 로펌과 제휴해서 변호사 업무를 한다고 게재했다. 나는 일단 서초동에 단독 사무실을 내고 개인 변호사사무실 등록을 했다.

 

사무실을 얻는 것도 쉽지 않았다. 몇 군데 빈 사무실이 있었으나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다 장단점이 있었다. 당시 직원으로 함께 일하기로 한 이원일 과장과 함께 돌아다녔다.

 

조직 속에 있던 사람이 밖에서 개인 신분으로 돌아다니는 것은 초라한 생각이 들었다. 가구를 구입해야 했고, 사무용품도 마련해야 했다. 직원을 구하는 것도 어려웠다.

 

마침내 서울 서초구 서초동 1709-4 영포빌딩 405호실을 계약했다. 조병길 변호사님이 사용하던 사무실인데 그 분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간다고 해서 얻게 되었다. 인테리어는 아주 간단하게 했다. 집기를 들여놓고 사무실을 꾸며 놓으니 기분이 좋았다.

 

공무원 생활을 하면 자기 공간이 없다. 인사이동에 따라 수시로 사무실을 옮겨야 한다. 한 군데 머물러 있지 못한다. 그런데 이제는 내 개인사무실이니 안정이 된 것이다. 그 점이 좋았다.

 

1998년 8월 26일 변호사등록을 하고, 변호사 신분증을 받았다. 오랜 세월 공무원 생활하다가 공무원 신분증을 반납하고, 변호사 신분증을 받으니 기분이 묘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로서 개인사업자등록을 했다. 단독으로 개업을 한 것이다.

 

9월 16일 변호사 개업식을 했다. 이른바 개업소연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서 축하를 해주었다. 인사말씀을 드렸다. 앞으로 변호사로서 돈욕심 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겠다는 취지였다. 나중에 개업식 장면을 사진첩으로 만들어 받았기 때문에 지금도 가끔 그 앨범을 보면서 개업 긴장했던 모습을 보곤 한다.

 

많은 가까운 분들의 얼굴이 함께 들어있다. 사진은 그래서 좋다. 살아가면서 오래 돼서 잊고 있었던 기억을 다시 되살린다. 함께 마음을 통했던 좋은 분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되새기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개업을 하자, 생활은 완전히 달라졌다. 범죄를 수사하고 처벌하는 일을 하다가 갑자기 피고인을 변론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얼떨떨했다. 구치소에 찾아가 피고인을 접견하는 일도 어색했다. 법정에 들어가 맞은편에 앉아 있는 검사를 바라보는 것도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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