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남녀차별개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다

 

 

 

1999년 가을부터 중국 대련시에 다니기 시작했다. 대련시에서 건축한 쌍흥코리아패션타운상가에 대한 관리회사 고문변호사로 위촉받아 법적 문제를 검토하고 사업지원을 해주기 위해서였다. 대규모 건물이 지어졌고, 의류패션사업을 하는 상인들이 분양을 받도록 법적 자문을 해주었다.

 

그러나 중국사업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대련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쌍흥빌딩은 주변 환경조성이 늦어져 분양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해외에서 비지니스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했다.

 

나는 주말이면 대련으로 갔다. 비행시간이 1시간밖에 되지 않아 마치 제주도를 다니는 기분이었다. 대련시의 바닷가 풍경은 너무 아름다웠다. 오염되지 않은 순수를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대련을 다닐 무렵, 나는 미국에 있는 교포와 함께 블루클럽 차이나와 블루클럽 아메리카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 역시 이런 저런 이유로 재미를 보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정부는 여성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구성되는 남녀차별개선위원회(위원장 한명숙 여성부 장관) 비상임위원 8명을 임명했다. 남녀차별개선위원회는 위원장과 상임위원인 이상덕 여성부 차별개선국장 외에 비상임위원 8인으로 구성되었다. 비상임위원으로는 김영란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김윤성 서울지검 총무부장, 차명희 전 여성특위 사무처장, 정강자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 조옥라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여상규, 김주덕, 황덕남 변호사가 임명됐다.

 

1999년 사단법인 한국산업재산권보호협회 활동에 참여했다. 동대문시장에서 원단장사를 하는 최정수 사장의 의장권사건을 맡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의장권자의 법적 보호가 매우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장권을 포함한 산업재산권보호협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런 제안에 따라 뜻을 같이 하는 회원들을 모아 1999년 12월 6일 사단법인 한국산업재산권보호협회를 특허청장으로부터 허가번호 제99-3호로 설립허가를 받았다.

 

사단법인의 목적은 산업재산권 침해소송 당사자에게 무료변리 및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소송지원과 구체방안을 강구하고, 권리침해와 권리구제 사례자료를 수집 및 조사 분석하여 산업재산권의 보호에 장애가 되는 각종 제도와 자료를 정부에 제공하는 등 산업재산권침해 구제제도 발전에 기여함과 동시에 정의로운 산업재산권 제도를 실현시키는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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