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군산을 다녀오다

 

 

 

논 옆에 심어놓은 대추나무에 대추가 많이 열렸다. 알이 굵었다. 몇 개를 따서 먹었다. 맛이 좋았다. 노인회관에 가니 동네 노인 몇 분이 있었다. 길가에 지은 건물은 요양원 간판이 붙어 있었다. 해동교회도 은근히 컸다. 부근에 문창초등학교가 있다. 시내 들어가는 길 양쪽으로는 목재소가 많이 들어서 있었다.

 

군산수산물종합센터를 찾아갔다. 수산시장을 구경한 다음 군산회집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오후 4시 30분경 차를 탔다. 돌아오는 길이 많이 막혔다. 집에 도착하니 8시 30분이 되었다. 하루 종일 운전을 8시간 했다.

 

9월 27일 일요일. 추석이다. 지금까지 지내온 한가위 명절은 나에게 어떤 추억으로 남아 있을까? 대체로 평범했지만, 지금까지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것은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큰 누님 결혼 때문에 진 빚이 있어 추석 명절 즈음해서 빚쟁이들이 찾아오던 기억이다.

 

채권자들은 늘 추석 명절 같은 때에 집으로 부모님들을 만나러 왔다. 나는 집에 부모님들이 안계시다고 거짓말을 해야 했다. 어린 나이에 거짓말을 하려면 늘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채권자가 가지 않고 기다리다가 부모님들을 만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채권자가 먼저 집을 찾아오고, 내가 밖에 있다가 채권자를 만나서 부모님들이 집에 없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이런 사정을 모르고 부모님들이 방에 있다가 갑자기 밖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제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추석이나 구정 때 제대로 음식을 장만하지 못했다. 옛날 분들이라 아무리 어려워도 제사와 차례는 꼭 지냈다. 한번도 빠진 일이 없었다. 제사음식과 차례음식을 장만하는 것도 없는 살림에는 걱정거리였다.

 

명절이 되면 동네 사람들은 음식을 푸짐하게 장만하고 맛있게 먹는다. 많은 가족들이 모인다. 색동저고리도 입고 윷놀이도 한다. 그런데 우리 가족은 그러지 못했다.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없는 사람들에게 명절은 즐거움이 아니라 힘든 일이다.

 

아버님은 대전에서 제재소를 크게 하다가 그만 둔 상태였기 때문에, 더욱 고통스럽게 느꼈던 것 같다. 잘 살다가 못사는 사람들의 비애는 그만큼 크다. 나는 중고등학교 다닐 때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없는 사람들의 심정과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직접 경험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2015년 10월 3일 토요일 개천절이다. 작은들농업법인주식회사로 부동산을 취득했다. 등기이전신청을 해놓았는데, 내가 과점주주로 되어 있어 이중으로 취득세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다. 토요일 아침 일찍 조영호 실장에게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주식이 65%나 된다는 것이었다.

 

윤주선 세무사와 상의를 했더니 일단 주식을 양도하라는 것이었다. 월요일 아침까지 노심초사했다. 제대로 따져보지 않았던 것도 후회가 되었다. 그런데 법령을 찾아보고 남양주시청에 물어보니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법인 설립시에 과점주주가 된 사람은 아무런 해당 사항이 없다는 것이었다. 큰 걱정을 덜게 되었다. 마음이 후련하다.

 

어제 밤에는 일찍 잠이 들어서 그런지 중간에 여러 차례 잠에서 깨어 뒤척였다. 꿈에서 내가 가지고 있던 오토바이와 화물차가 엔진이 폭발해 불에 타는 꿈을 꾸었다. 이런 저런 꿈에서도 무척 심란했다. 그래서 혹시나 싶었는데 다행이 취득세이중부담문제가 후련하게 해결되었다. 10월 5일 월요일 오후 2시에 대한공증인협회 회의실에서 제8차 상임이사회 회의가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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