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212)
속초에서 돌아온 원홍은 다시 공부에 열중했다. 모든 것을 잊고 오로지 의학에만 전념했다. 영색을 만나는 것도 자제했다.
더 이상 영색을 만날 마음도 없어졌다. 핑계는 언제나 공부였다. 장학금을 받아야 했고, 나이 든 부모님께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영색도 그런 원홍의 처지를 이해했다.
하지만 영색은 시간이 가면서 원홍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조건이 좋은 영색에게 많은 남자들이 프로포즈를 해왔다. 그러다가 체육학과 졸업반 남자를 알게 되었다.
최권식은 부잣집 아들이었다. 공부를 싫어해서 체육학과에 들어갔지만, 그냥 졸업만 하면 되었다. 아버지 사업을 이어받아야 할 입장이었다. 그는 BMW 스포츠카를 타고 다녔다. 그는 멋을 부리고, 남자다웠다.
원홍과는 전혀 달랐다. 워낙 집요하게 영색에게 댓쉬를 했기 때문에, 마침내 영색도 권식에게 마음을 열었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내던 중 어느 날 영색에게 원홍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FM 멤버들을 초대해서 저녁을 한번 거창하게 사겠다는 것이었다. 영색은 원홍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고등학교 동창이고, FM 멤버들과 친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고 했다.
금요일 저녁 원홍과 5명의 멤버들은 강남역 부근에서 만났다. 고깃집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그리고 2차로 생맥주를 마시러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모임을 하자 마자, 원홍은 ‘백미와 흑미’에게로 시선이 끌렸다. 저항할 수 없는 마력에 눌려 온통 마음이 그 두 사람에게 가 있었다. 대화도 모두 건성으로 들렸다. ‘백미와 흑미’가 하는 말만 원홍의 귀에 들려왔다.
백미와 흑미도 마찬가지였다. 원홍을 보는 순간, 마치 아주 오래 전부터 가깝게 지내던 사람처럼 느껴졌다. 원홍과 시선을 마주치자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가슴이 떨렸다. 도대체 그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백미와 흑미에게 원홍은 처음부터 영색의 남자였다. 영색과 이미 몸까지 섞은 사이인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백미와 흑미는 원홍처럼 공부 잘하고, 이지적인 남자를 원래 좋아하지 않았다.
다만, 원홍이 영색의 애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친절하게 대해주고, 좋게 대해주려고 했던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상하게 백미와 흑미가 먼저 원홍에게 끌려들어가는 것이었다.
원홍은 술에 취하자 백미와 흑미에게 물었다. “만나는 남자 친구는 있어요?” 두 사람 모두 똑 같이 대답했다. “아뇨. 없어요.” 원홍은 자신이 지은 원죄를 기억했다. 그렇지만 그런 사실을 입밖에 낼 수는 없었다. 죽을 때까지 혼자 가지고 갈 사랑의 비밀이었다.
“그럼 내가 의대 친구 두 사람을 소개시켜줄게요. 다음 주에 같이 만나요. 영색 씨와 같이.” 이렇게 수작을 걸었다.
그래서 원홍은 친한 의대 친구 2명을 데리고 영색과 백미, 흑미를 만났다. 원홍의 속셈은 세 팀이 만날 기회를 만들어서 ‘백미와 흑미’를 한번이라도 더 얼굴을 보려고 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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