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214)

 

원홍이 소개해 준 덕분에, 같은 의대생인 권종범과 이해성은 신이 났다. 괜찮은 여학생을 소개받아 데이트에 바빴다. 종범은 백미와 해성은 흑미와 파트너가 되었다.

 

원홍은 당연히 영색의 짝으로 간주되었으나, 영색은 이미 최권식과 매일 만나는 사이로 발전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원홍은 아주 이상하게 되었다. 원홍이 친구들에게 백미와 흑미를 소개해준 것은, 일단 핑계거리를 만들어서 백미와 흑미를 자주 볼 기회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백미와 흑미가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원홍의 친구들과 가까워지면 그 과정에서 원홍도 같이 시간을 보내려고 했던 것인데, 의외로 친구들이 적극적으로 백미와 흑미에게 달라붙자 원홍만 외톨이가 되고 말았다. 원홍은 어느 날 친구들과 만나서 술을 마시다가 이런 말을 했다.

사실 백미는 내가 좋아했던 아이야. 그런데, 종범아! 아직 깊은 관계가 아니면, 너는 손을 뗄 수 없을까? 내가 워낙 좋아했고, 짝사랑했던 아이야. 내가 너를 소개해준 것은 둘이서 잘해보라고 한 것이 아니고, 내가 백미를 볼 기회를 얻기 위해서였던 거야. 너에게 백미를 소개해주고 지금까지 두 달 동안 나는 백미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하고 있어. 공부도 되지 않아. 24시간 백미만 생각하고 있어. 일주일에 세 번씩은 백미의 집 앞으로 가서 백미가 귀가하는 모습을 멀리 지켜보고 있었어. 적외선카메라로 사진도 다 찍어놨어. 그것도 동영상으로 말이야. 백미 없으면 나는 미칠 것 같아. 학교도 못다닐 것 같고. 종범아! 미안하다. 나좀 살려줘. 나도 이럴 줄 몰랐어.”

 

종범은 깜짝 놀랐다. 원홍은 청교도인 줄 알았다. 교회 열심히 다니고, 여자에 별로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 그리고 영색과 오랫동안 사귀다가 최근에 원홍이 공부 때문에 잘 안 만나고, 그러다가 영색이 다른 남자와 데이트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종범아! 그게 말이 되니? 네가 좋아하면 왜 나에게 소개를 시켜줬어? 그리고 그런 의도로 소개를 했으면, 나에게 처음부터 말을 했어야지? 지금 와서 난들 어떻게 하니? 나도 백미가 좋고, 백미 역시 나를 좋아해. 네 말을 듣고 내가 지금 백미에게 그만 만나겠다고 하면, 백미는 크게 상처를 받을 거야. 나도 그렇고. 아무튼 내가 생각해볼 게. 나도 여자 때문에 너와 친구로서의 의리를 저버리고 싶지는 않아. 그런데 백미는 너 같은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을 거야. 그건 내가 백미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이야. 그나저나 왜 너는 이렇게 골치 아픈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놓고,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거야? 이해가 안 돼.”

 

내가 바보야. 처음부터 백미 씨에게 강력하게 프로포즈를 했어야 하는데, 그땐 망설였어. 그리고 아무래도 백미 씨의 친구 영색이 있었으니까. 내가 대놓고 영색의 친구인 백미 씨에게 말을 꺼내기가 곤란했어.”

 

종범은 원홍의 말을 듣고 무척 괴로워했다. 하지만 워낙 가까운 친구라 종범은 백미를 만나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내가 자기를 좋아하는 거 알지? 그런데 원홍이 자기를 좋아한대. 그러면서 나보고 양보를 하래. 이상한 친구야.”

 

그건 말도 안 돼요. 그리고 괜히 하는 말이예요. 우리는 고등학교 때부터 떨어져서는 못사는 5인방이었어요. 그중에 대장이 영색이었고, 원홍 씨는 영색의 애인이었어요. 그래서 나도 원홍 씨를 알게 된 것이예요. 그런데 5인방의 모임에 원홍 씨가 참여했고, 그 후 영색과 소원해진 거예요. 그런데 원홍 씨가 영색과 만나지 않는 이유가 나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건 자기 애인을 버리고 애인의 친한 친구를 어떻게 해보겠다는 거 아니예요. 그건 나쁜 사람이지요. 그리고 나는 원홍 씨처럼 내성적이고, 말도 없고, 차가운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요. 다만, 처음에는 공부만 아는 젊잖은 의대생이라고 해서 막연하게 존경하고 친구의 애인이라서 좋게 생각했던 것이예요. 그런데, 만일 종범 씨가 원홍 씨 때문에 나와 그만 만나자고 하면 나 역시 종범 씨를 더 이상 만나지 않을 거예요. 원홍 씨를 안 만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요. 아무튼 우리 5인방 사이에서 이런 이상한 이야기가 나오니 무척 당황스럽네요.”

 

이런 말을 한 다음 백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갔다. 술을 마신 상태에서 택시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원홍이 있었다.

 

백미는 깜짝 놀랐다. 원홍이 이상해 보였다.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아니. 저 사람이 저 정도였나!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참 한심하다. 명문대 의대생이 왜 저렇게 살까? 영색이가 얼마나 괜찮은 앤데!’

 

백미는 원홍을 냉정하게 쳐다본 다음 거들떠 보지도 않고 집으로 들어갔다. 백미는 흥분해서 이런 사실을 FM 멤버들에게 세 시간에 걸쳐서 순차로 1인방송을 했다.

 

다만 영색에게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멤버들에게도 이 쇼킹한 뉴스는 우리끼리만 알고, 영색에게는 비밀로 하자고 했다. 영색이 너무 충격을 받을까 염려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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