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218)
호텔에 가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들어갔다. 영색은 약간 술에 취했다. 그에 반해 원홍은 와인 한잔만 마시고 더 이상 마시지 않아 말짱했다.
행사를 치루기 전에 불을 꺼야 하는데, 원홍은 완전히 소등을 하지 않고, 서로의 얼굴을 알아볼 정도로 조명을 해놓았다.
그리고 영색이 샤워를 하는 동안 침대 시트 위에 실크천을 깔아놓았다. 영색은 의아했다. 하지만 첫경험이라 그 의미에 대해 물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다만,영색은 원홍이 의대생이라 위생관념이 철저해서 비록 세탁해놓은 침대 시트지만, 혹시 지저분한 병균이 남아 있을까봐 걱정이 되어 시트 위에 또 멸균 소독한 고급 실크천을 깔아놓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 때문에 영색은, ‘역시 의대생은 다르구나! 이렇게 철저하게 위생을 관리하고, 여자를 아끼는구나 !’라고 내심 감탄하면서 존경했다.
그리고 그런 모든 것이 원홍이 영색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오는 배려와 애정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영색은 그전에 읽은 야한 소설에서 남자들이 여자 나오는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실 때 옆에 앉아 술시중을 들게 하는 장면을 여러 차례 읽은 적이 있다.
그때 제일 나빴던 것은 손도 닦지 않고, 오징어나 땅콩 같은 술안주를 손으로 먹으면서, 그 손으로 여자의 소중한 부분을 만지는 행태였다. 그 손에는 핸드폰을 하루 종일 들고다니지, 택시를 타고 다니지, 담배와 라이터를 만진 아주 더러운 손이다.
손을 알코올로 열 번 이상 소독을 해도 병균이 득실득실할 텐데, 그 손을 비누로 닦지도 않고, 대충 물수건만 형식적으로 만진 다음, 여자를 만지면 그 잡균과 병균은 고스란히 무방비 상태의 여자 신체로 침입하게 된다.
얼마나 비위생적이고,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처사인지 모른다. 영색은 그런 소설을 읽을 때마다, 분개하면서도 그것은 작가가 허구로 과장해서 쓴 것이지, 대한민국에 그럴 남자는 해방 이후에는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소설은 소설이었지만, 아무튼 그런 더럽고 지저분한 남자와 대비되니 원홍은 정말 영국 신사였다. 신부님 수준이었다.
가만히 올려놓고 앉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기도를 했다. 무슨 기도를 하는지는 몰랐다. 그런 다음 영색의 곁에 누워 10분 정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영색은 숨이 막혔다. 하려면 빨리 할 것이지, 나체로 눕혀 놓고, 그것도 불을 완전히 끄지 않은 상태에서 창피하게 만들어놓고 있으니 이상하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원홍은 행위를 시작하기 전에, ‘사랑해!’라고 작은 음성으로 말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행위를 시작했다. 원홍은 무척 서툴렀다. 영색은 심한 통증을 느꼈다.
소설이나 인터넷에서 듣던 첫경험의 감흥이나 짜릿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원홍은 불과 3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일을 마쳤다.
그리고 사전에 영색으로부터 자세한 개인정보를 들어서 이 날은 가임기가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피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어서 영색은 당연히 안에 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원홍은 예상을 뒤엎고 안에 하지 않았다. 대신 실크천 위에 하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원홍은 10분 동안 가만히 누워서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영색은 그런 침묵이 이상했지만, 처음 하는 여자가 너무 반응을 보이거나, 말을 많이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창피해서 눈을 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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