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221)
종범이 먼저 나가고 원홍에게 10분쯤 있다가 나가라고 하자, 종범이 나간 다음 원홍은 곧 바로 오빠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러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오빠에게 말했다.
“형님! 백미 씨는 제 사람입니다. 저는 절대로 백미 씨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형님께서 도와주십시오. 부탁합니다.”
오빠는 기가 막혔다. 오빠는 공수부대 출신으로 성격이 매우 거칠었다. 그 어려운 공수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쳤을 뿐 아니라,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강하훈련을 많이 해서 정의롭지 못한 인간들을 보면 주먹부터 올라갔다.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백미를 오빠로서 아끼고 아꼈는데, 이런 지저분한 인간들이 백미를 놓고 추태를 부리니 용서할 수가 없었다.
성질 같아서는 두 놈 다 급소를 찔러서 때려눕히고 싶었는데, 그래도 의대생이라고 하니까 봐준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등신 같은 놈이 백미가 자기 사람이라고 하니 이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부엌으로 가더니 식칼을 들고왔다. 그리고 칼을 오른손으로 높이 들더니, 세 번 돌렸다. 그런 다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원홍에게 밖으로 나가라고 손짓을 했다.
원홍은 숨이 막혔다. 오빠의 눈빛에는 살기가 돌았다. 열흘을 굶고 쓰러지기 직전에 얼룩말의 목덜미를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대는 숫사자의 눈빛이었다. 원홍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어나 도망쳐나왔다.
원홍은 일주일 넘게 학교에 가지 않았다. 강의도 빼먹고 집에 틀어박혀 괴로워했다.
사태가 이렇게 돌아가자, 원홍은 이러다가 혹시 자신이 범한 강간죄가 들통이 나지 않을까 걱정하기 시작했다. 원홍은 오래 전에 본 영화가 떠올랐다.
제니퍼 리브 휴잇과 세라 미셸 겔러가 주연한 미국의 공포영화,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I know what you did last summer)’의 무시무시한 장면들이 떠올랐다.
영화에서는 4명의 주인공이 독립기념일 축제를 마치고 밤에 바닷가에 놀러갔다가 어떤 남자를 자동차로 치는 사고를 낸다. 4명의 젊은이들은 이런 교통사고를 신고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다가 피해자를 바다에 던지고 도망간다.
이런 사건을 저지른지 1년 후에 4명에게 ‘I know what you did last summer’라는 문자메시지가 도착한다. 그리고 갈고리를 들은 어부가 4명에게 순차로 복수를 벌인다. 피해자는 차에 치어 바다에 던져졌지만 죽지 않고 살아났던 것이다.
원홍은 혼자만이 알고 있는 무시무시한 강간범죄에 대해 혹시 5명의 FM 멤버들이나 종범과 해성 친구들이 알게 될까봐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욱 백미에게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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