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232)

 

50번째 후보로 등극한 현옥은 무척 조심스러웠다. 지금까지 별로 연애경험도 없었지만, 조장이라는 남자는 특별했다. 모든 면에서 자신만만했다. 그리고 꿈이나 포부가 보통이 아니었다. 잘 하면 나중에 대통령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현옥은 당연히 영부인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코 쉽지 않은 의대 공부를 6년 하고 인턴이나 레지던트 생활을 하고 전문의 자격을 따봤자 좋은 대학병원 취업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뿐만 아니라, 인턴이나 레지던트 할 곳도 마땅치 않다, 현옥의 아버지는 육사는 나왔지만, 지금은 실업자 상태로서 어디 빽을 쓸 곳도 없다.

 

그리고 아버지는 설사 빽을 쓸 수 있어도 절대로 빽을 쓸 위인이 아니었다. TV를 보다가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가 자녀들을 공기업에 부정한 청탁을 해서 아무 스펙도 없는데 입사를 시켰다든가, 순위를 뒤바꾸어 승진시켰다는 뉴스가 나오면 순간적으로 흥분해서 밥상을 치기도 하고, 마시던 막걸리를 독한 소주로 바꾸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현옥의 어머니는 밥상을 차려놓고, 뉴스에서 그런 나쁜 공직자나 국회의원 관련 보도가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되었다.

 

한번은 아버지가 너무 흥분해서 밥상을 잘못 치다가 완전히 뒤집어 엎어서 안방이 완전히 반찬 냄새로 한 동안 들어갈 수 없게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자신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안방을 어머니가 제대로 청소를 하지 않았다고 어머니를 내쫓으려고 시도도 했다.

 

어머니는 남녀평등이며, 여성가족부가 출범한 지 벌써 15년도 넘었는데, 도대체 아버지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 사는 사람이냐고 울분을 토했지만, 그것은 모두 아버지가 술에 취해 잠들었을 때 어머니 혼자 조용히 일기장 비슷한 종이에 아주 작은 글씨로 써놓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심한 노안이라, 어머니 노트를 봐도, 그곳에 큰 글씨 20포인트 이상으로 써놓은 아들과 딸에게 보내 줄 물품 리스트, 즉 깻잎절임, 미숫가루, 홍삼 6년근, 메추리알 등의 글씨만 보고 말았다.

 

그래서 현옥은 이런 저런 집안사정, 자신의 사회적 위상 등을 감안할 때 조장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고 잘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현옥이 입장에서도 조장에게 못마땅한 부분은 많았다. 그중 제일 중요한 것은 여자관계가 복잡하다는 것이다.

 

너무 복잡해서 과연 이 남자가 일부일처제를 헌법적 가치로 모시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이 문제를 제기하면, 조장은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남자는 밖에서 할 일이 중요하지, 여자는 이차적인 거야. 여자에 목숨을 걸면 큰일을 못. 그리고 여자는 어디까지나 남자가 책임지고 보살펴야 하고, 여자는 내조를 잘해야 하는 거야.’ 이런 구시대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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