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235)

 

아버지는 늘 강조했다. “전쟁을 할 때, 공격개시시간을 정했으면, 모든 부대원이 일시에 똑 같이 공격을 해야지, 어떤 부대원은 5분 늦게 공격하고, 어떤 부대원은 5분 전에 제멋대로 공격하면 그 부대는 전멸하는 거야. 이렇게 시간은 5분 가지고 생명을 잃을 수 있어. 한국사람은 그래서 약속시간에 늦는 것이 습관이 되어 옛날에는 Korean Time이라고 놀리는 말까지 생겨난 거야.”

 

그 말도 맞는 것 같지만, 여기는 군대가 아니고 가정이고, 뿐만 아니라 지금은 전쟁 중이 아니라 평화 시라고 어머니는 생각했지만, 워낙 아버지의 말이 논리정연하고, 위엄이 있었고, 목소리를 저음으로 깔아서 천천히 말했기 때문에 감히 생활계획표 시행조치에 대해 아무런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융통성 없는 생활계획에 대해 어머니로부터 처참한 강제수용소 같은 실상을 전해 들은 주변 사람들은 아버지를 ‘원칙주의자’ ‘합리주의자’라고 칭송하기도 하고, ‘독재자’ ‘또라이’ ‘사이비교주’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행과정에서 많은 진통과 고통은 있었지만, 이러한 철저한 생활계획표 때문에 조장을 비롯을 자녀들이 모두 공부 잘하고, 모범적인 학생으로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은 자타가 모두 공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는 재정 회계분야에도 똑 같은 원칙을 적용했다.

 

결혼 초기부터 가계부를 복식으로 작성하도록 했다. 어머지가 작성하고 아버지가 결재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 제도는 아버지는 결혼 전부터 어머니와 데이트를 처음 시작하는 그 다음 날부터 먼저 시작했다.

 

어머니는 결혼하고 나서 아버지가 그 전 1년 동안 금전출납부를 써왔는데, 그 내용을 보니까 어머니와 데이트한 비용을 일원 단위로 적어놓은 것을 보고 매우 놀랐고, 아버지가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고 술회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전자계산기를 쉽게 구하지 못해 아버지는 암산으로 했든가, 주판으로 밤을 새워 입출금 금액을 계산해서 완벽하게 맞추어 놓았던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사용하는 물품의 재고조사도 한달에 한번씩 했다. 재고조사 대상은 주로, 치약과 비누, 퐁퐁, 김장배추 등이었는데, 나중에는 의복, 구두 및 운동화, 런닝, 팬티, 양말까지 품목이 확대되었다. 마치 미국과 중국 사이에 무역전쟁을 하면서 관세부과대상 품목이 단계적으로 늘어나는 것과 비슷했다.

 

처음에는 어머니는 이런 재고조사의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귀찮다고 불평을 했지만, 자꾸 해보니까 익숙해져서 순식간에 재고조사를 마칠 수 있었고, 또 물품을 낭비하지 않고 아껴 쓰는 습관이 생겨 부의 축적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버지의 천재적인 가계운영, 가정생활의 지도 감독에 찬사를 보내게 되었다.

 

아버지는 새로운 종교, ‘가족교’ ‘가정교’ ‘부부종교’라는 신비스러운 교주의 반열에 올라선 것처럼 보였고, 얼굴이나 머리에서 광채가 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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