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236)
조장은 현옥을 만나면서 적어도 일주일 전에 시간과 장소를 정확하게 정했다. 한 번도 시간을 어기거나, 장소를 변경한 적은 없었다.
만일 약속시간을 5시로 정했는데, 조장의 수업시간이 교수가 종료시간을 넘겨서 그 때문에 현옥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경우에는 강의를 듣다가 도중에 나와서까지 약속을 지켰다.
현옥이 한번 약속시간을 어겼을 때, 조장은 얼굴이 시뻘개지면서 사회생활에 있어서 약속은 천금보다 중하다는 말을 한 시간 넘게 귓속에 넣어주었다.
현옥은 조장이 나중에 대통령까지 할 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렇게 매사에 철저하구나 생각하니, 현옥의 잘못에 대해 비판하고 꾸짖는 것은 오히려 현옥이 영부인이 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믿고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장의 비난이나 비판은 모두 현옥의 장래를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관념이 없으면 미래의 영부인은커녕, 시계판매상의 보조원으로도 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고급 시계는 일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싸도 스위스제조 시계를 찾는 것이다. 벽시계처럼 크기는 늙은 호박처럼 크고 둥굴어도 시간이 몇분이라도 늦으면 시계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이라는 사실까지 조장은 현옥에게 소상하게 하나씩 손에 쥐어주듯이 머릿속에 넣어주었다.
장차 영부인이 되려면 스텝 바이 스텝으로 모든 지식과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지론에서였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니 현옥은 조장의 단점이나 약점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대부분 남보다 훨씬 뛰어나거나 탁월한 장점이나 우수성이 부각되었다.
조장은 현옥을 만나면 항상 경치 좋은 곳으로 드라이브를 하고,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그리고 지방이라 서울보다는 빈도가 적어서 드물게 문화공연이 열리면 빠지지 않고 데리고 다녔다.
오페라, 뮤지컬, 관객 300만명 돌파 국내외 영화, 오케스트라 연주, 연극, 전국노래자랑, 전국씨름대회, 소싸움, 닭싸움, 개싸움 등등...
이런 공연이나 시합은 장차 대통령이 되려면 반드시 봐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조장은 노래연습장이나 PC방, 게임방, 맛사지실, 성매매업소, 노천탕, 찜질방, 보신탕집, 포장마차, 24시간 해장국집 등은 절대로 가지 않았다.
학생회 일을 하다보면 가끔 불가피하게 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통령이 민정시찰 차원에서 재래시장을 방문하는 정도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불과 5분 이내의 시간만 머물고 그 이상의 시간은 체류하지 않았다. 남자의 품위와 위신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현옥과 데이트할 때도 사전에 대략 시간을 이야기해주었다. ‘오늘은 밤 10시까지 있다가 가자’는 식이었다.
이런 조장의 태도에 익숙해지다 보니, 어떤 때 처음 만났을 때 약속은 밤 10시까지라고 해놓고, 조장이 자신의 말에 도취되어서, 예를 들면, 장차 국회의원이 되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선거공약 같은 말을 하다가 30분이 넘으면 현옥이 오히려 불안해서 어쩔 줄 몰랐다.
그 다음 만나서 지난 번, 현옥이 조장에게 당초 예정했던 미팅시간을 30분이나 오버했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면, 조장은 ‘아 대통령은 원래 기자회견을 할 때 질문이 많아지거나, 답변을 기자들이 알아듣기 쉽게 상세하게 해주다보면 30분 정도는 늦어질 수 있는 거야. 다만, 그 이상 늦어지면 곤란하지.’라고 차분하게 설명해주었다. 현옥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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