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89)
“귀하를 성폭력범죄처벌범으로 체포합니다. 귀하는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경찰관은 배불만(가명, 48세)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면서 아주 무표정하고 무감각한 음성으로 말했다. 경찰관이 현행범을 체포할 때 범인에게 말해주어야 하는 피의자의 권리다. 사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고지사항이다.
헌법이나 형사소송법에는 매우 중요한 권리로 보장되어 있는 것이지만 범죄를 저지르고 현장에서 체포되는 범인에게 그런 말은 들리지 않는다. 경찰관은 곧 이어 말했다.
“주머니속에 들어있는 핸드폰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불만은 경찰관의 요구대로 핸드폰을 꺼내서 주려고 했다. 그런데 핸드폰이 주머니에 없었다.
불만이 도망가면서 정신이 없어 핸드폰을 손에 들고 있다가 땅에 떨어뜨린 것 같았고, 어두운 밤이라 그 핸드폰을 길거리에서 누군가 주워서 가지고 간 것 같았다.
불만이 핸드폰이 없다고 하자, 경찰관은 그 말을 믿지 않고 불만에게 말했다. “그러면 소지품 검사를 하겠습니다.” 불만은 언뜻 인터넷에서 본 것이 생각났다. “안 됩니다. 압수수색영장을 가져와야 제 소지품검사를 할 수 있습니다.”
경찰관은 선뜻 불만의 신체에 대한 수색을 하지 못했다. 자칫 잘못하면 형사소송법에 위반되고 피의자에 대한 권리침해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옆에서 이런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공칠이 갑자기 나섰다.
“뭐라고! 이 나쁜 놈. 무엇이 어째고 어째, 빨리 핸드폰 꺼내.” 공칠이 불만의 주머니를 뒤졌다. 불만은 공칠을 물리치려고 했지만 물리력으로 공칠을 당할 수 없었다. 경찰관은 옆에서 공칠을 제지하는 척하면서 사실상 내버려두었다.
공칠은 일부러 불만의 신체를 강하게 아픔을 느낄 정도로 샅샅이 뒤졌다. 불만의 낭심을 세게 압박했다. 팬티속에 핸드폰을 숨겨둔 것이 아닌가 하면서 급소를 공격해서 통증을 가했다. 불만이 통증 때문에 신음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약간 섹시해서 옆에 있는 여자와 고등학생들에게 민망할 정도였다.
결국 핸드폰은 발견하지 못하고 순찰차에 타고 경찰서로 갔다. 경찰서에 인계된 불만은 곧 바로 피의자로 조사를 받았다. 공칠과 피해자인 여자, 그리고 불만을 체포한 의로운 시민인 학생 모두 참고인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불법한 사진이 담겨있는 불만의 핸드폰이 사라진 이상 직접적인 증거는 없었다. 이 사건에서 증거는 오직 불만이 여자의 치맛속을 핸드폰으로 찍는 장면을 목격한 공칠의 진술뿐이었다.
불만은 경찰서에 가서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자신은 여자의 치맛속을 찍은 사실이 결코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공칠에게서 심한 술냄새가 나는 것을 보고 공칠이 술에 취해 환상을 보았거나, 평소 공칠이 다른 여자의 치맛속을 많이 찍고 돌아다녀서 자신이 그 여자의 치맛속을 찍으려고 하다가 남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이라고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불만은 강조했다. 자신은 법과대학을 졸업했고, 현재 방송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람인데, 어떻게 지하철에서 여자의 치마속을 찍을 생각을 하겠느냐고 했다.
불만은 여자 약사와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고 살다가 이혼해서 혼자 살고 있지만, 현재 만나고 있는 여자 친구도 있다고 했다.
그 여자 친구도 이름만 대면 다 알 수 있는 연예인이라고 암시했다. 이 대목에서 불만은 갑자기 으시대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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