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불장난>
불륜의 경우는 어떠한가? 많은 사람들이 불륜이라는 이름으로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 사랑 때문에 한이 맺혀 있을 것이다. 분명 자신의 몸과 마음을 스쳐 지나갔던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건 슬픈 일이다. 자신의 존재의미를 상실케 하는 비극적인 사건이다.
처음부터 그런 위험을 걱정했는지 모른다. 불륜으로 시작된 사랑의 종말을 예감하고 더 안타깝게 붙잡으려고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사라져 버리고 이제 더 이상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비극적인 상황을 예감했던 것은 남달리 강했던 감수성이었을 것이다.
영희(34세, 가명)는 어느 금융기관의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5년 전, 그러니까 영희가 29세의 나이에 고객으로 자주 다니던 철수(44세, 가명)를 만났다. 업무 때문에 공식적으로 몇 차례 만나면서 철수가 적극적인 접근을 해왔고, 영희도 싫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따라주었다.
그래서 가까워졌는데, 철수는 이미 결혼해서 아이도 둘이나 있었다. 유부남이었다. 처음에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만남이었다. 그 만남의 복잡한, 어지러운 의미를 초기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같이 살 것도 아니고, 어차피 결혼한 남자를 만나면서 뭐 그렇게 따질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
적당히 결혼할 상대가 없는 상황에서 영희는 때로 외로웠다. 그 외로움을 여자 친구들과 지냈지만, 같은 여자들끼리 만나서 보내는 시간이 주는 의미는 한계가 있었다. 때로 이성과 함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분위기 있는 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이성과 함께 하는 것이 편하고 더욱 효과적이었다. 음악회를 간다든가 멋있는 곳에서 저녁식사를 한다든가 하는 데에는 괜찮은 남자가 필요했다. 사치품과 같은 것일 수 있다. 감성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나이를 먹어 갈수록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는 친구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던 것도 한몫했다. 그냥 편해서, 그리고 돈도 적당히 쓸 줄 알기 때문에 영희는 대화상대로서 때로는 분위기를 맞춰주는 상대로서 철수를 부담 없이 만났다. 철수는 부드러운 남자였고, 영희의 심정을 잘 헤아려서 편하게 해주었다.
사랑에는 일정한 단계가 있다. 그 계단의 의미는 사랑의 당사자만이 알고 있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면서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서로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그때마다 다가오는 느낌이 어떠한지는 아무도 모른다.
명확한 공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의 환경과 수시로 변하는 감정이 뒤섞여 밖으로 표출시키는 현상만 감지될 뿐이다. 처음부터 계산된 감정은 있을 수 없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 두 개의 존재가 뒤섞여 뿜어내는 오색찬란한 분수대의 물줄기 같다.
영희는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끌려 들어갔다. 아니 자신을 그대로 던져두었다고나 할까? 의식을 잃은 채 강물에 떠내려가는 것 같은 상태였다. 강물은 시간이 가면서 더 깊은 바닥을 밑에 두고 흘러 간다. 사랑에 깊어지면서 존재는 정체성을 상실한 채 떠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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