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 않는 것>
사방이 고요해서 한없이 가라앉는 밤
무엇을 더듬고 있는지 모른다
캄캄한 동굴에서 비취는 한 줄기 빛
그곳에서 적막을 깨는 음성이 들린다
우리가 걸었던 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가냘픈 풀잎의 뿌리에도
작은 비밀의 암호가 있었다
갑자기 말을 타고 달린다
오랜 시간 침묵이 흐르고
무가치한 사랑을 버리고
소중하게 껴안은 바람
빗물에 젖은 편지가 짓밟힐 때
차가운 기억은 되살아난다
존재는 부존재로 부각되고
아픔은 슬픔으로 각인된다
초록이 단풍으로 변해
봄비가 눈보라로 달라질 때
이성은 사라지고
감성이 뒤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