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실(喪失, forfeiture)
너와 걷던 길이 사라졌다
길가 봄꽃도 보이지 않고
앞산 아지랑이도 가려졌다
너 없는 길은 길이 아니다
봄 없는 꽃은 꽃이 아니다
안개가 자욱할 때
그곳에 호수가 있었다
물가에 작은 새 한 마리가
너를 닮았다
안개가 걷히자
새는 남쪽으로 떠났다
너와 만든 기억이 망각되었다
하얀 스크린에 까만 점 하나
점점 클로즈업 되면서
크고 작은 의미들이 겹친다
세월이 낙엽 따라 흐른다
비가 내리는 벤치에서
눈물에 젖은 편지를 읽는다
힘든 잉태를 이어
가벼운 상실이 선을 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