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비서와 늙은 사장의 은밀한 관계

 

혜경이 천공주식회사에 들어온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중학교 때부터 그림에 남다른 소질을 보여 열심히 했고, 그래서 전공으로 삼았으나, 막상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는 전공을 살려 취직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다가 천공주식회사에 들어왔는데, 입사한 지 얼마 있지 않아 사장 눈에 띄어 비서로 발탁되었다. 사장은 자신의 취향에 딱맞는 얼굴과 몸매,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임원들이 반대하는 데도 불구하고 무조건 비서실에서 근무하도록 지시했다. 혜경은 비서로서 차심부름이나 하는 정도였다.

 

사장 비서는 상당한 힘을 가진다. 임직원들이 비서에게 잘 보여야 하고, 비서는 사장 이외의 사람들에게 굽실거릴 이유가 없다. 비서에게 잘못 보이면, 사장에게 나쁘게 이야기하고 모함을 한다. 사장은 비서 말만 듣고 임직원을 해고하기도 한다. 아니면 한직으로 내쫓아버린다.

 

지금까지 비서로 출세한 사람은 수도 없이 많다. 특히 여자로서 그룹 회장에게 잘 보이면, 해외여행을 수행하고 다니다가 정을 통하고 아예 내연녀가 된다. 내연녀가 되면 잠자리에서 사장과 맞먹는 사이가 되는 것이니까 하루 아침에 수직상승을 하는 것이다. 말단 직원 주임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이사 상무 전무 대표이사의 단계로 하나씩 올라가야 하는데, 말단 직원에서 곧 바로 대표이사와 동급이 되는 것이다.

 

아이라도 낳으면 완전히 팔자를 고친다. 돈이 많은 사장이나 회장은 젊은 비서와 연애를 해도 절대로 아이를 가지려고는 하지 않는다. 아이를 가지면 나중에 상속문제가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평민 신분으로 궁궐 안에 들어갔다가 발탁되어 후궁이 되는 것과 같다.

 

 

혜경이 예뻐서 그랬는지 몰라도, 처음 취업했던 회사에서도 상무가 치근덕거렸다. 회식 자리에서도 상무는 늘 옆자리에 앉혔다. 노래방에도 데리고 가고, 혜경을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혜경은 그런 것이 느끼하고 싫었다. 나이 든 상사가 성희롱을 하는 것 같고, 성관계를 하려는 의도를 간파하고는 정말 싫었다. 그래서 그 회사도 몇 달 만에 그만두었다.

 

남자들 중에는 정말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다. 여자를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고, 무조건 성적으로만 생각한다. 직장에서 여직원을 볼 때 눈을 마주보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여자의 가슴을 뚜러지라 쳐다보고, 여자의 아랫도리를 유심히 본다. 돌아서 걸어가는 여직원의 엉덩이의 율동만 쳐다본다. 눈빛이 게슴츠레해진다. 여자는 직감적으로 느낀다. ‘, 이 남자는 정말 지저분하구나. 동물이구나!’ 그러면서 여성으로서 성적 수치심을 느끼는 것이다.

 

그 후 만난 사람은 유부남이었다. 혜경에게 상당한 경제적 지원을 해주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의 애인이 되었다. 집안 사정이 너무 어려워서 하는 수 없이 그 사람과 연애를 했고, 그런 상황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그 남자는 명품 가방과 백화점 옷을 사주고, 돈을 넉넉하게 주어서 회사에서는 혜경이 부잣집 딸이라고 소문이 나기도 했다.

 

혜경은 유부남을 은밀하게 만나 연애를 하였지만, 유부남 와이프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전혀 없었다. 유부남이 자신의 와이프와는 원래 정이 없이 살고 있고, 결혼하고 1년이 지난 후부터 섹스리스 100%라고 늘 강조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그 유부남과 결혼한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그냥 답답한 현실에서 만나는 남자 친구 정도에 불과했고, 나중에 시간이 가면 자연스럽게 헤어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날 천공주식회사의 정 사장과 임원 3명이 일본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그런데 혜경도 출장자 명단에 끼어 있었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여비서가 외국에 업무차 출장을 가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회사에는 영어와 일본어를 잘 하는 직원들이 있었다. 혜경은 영어도 못하고, 일본말도 전혀 못했다.

 

그런데도 사장 일행과 같이 출장을 간다는 것이었다. 이상했다. 아주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혜경은 안 가겠다고 말할 용기도 없었다.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직장을 그만 두어야 할 수도 있고, 비서직에서 부서를 옮길 수도 있었다. 혜경의 남자 친구 순현은 이런 사실을 알고, 왜 따라 가느냐고 펄펄 뛰었다.

 

 

네가 가서 할 일도 없잖아? 여비서가 일본까지 따라가서 무엇을 하자는 거야? 사장이 데리고 놀려는 거지?”

회사에서 가자는데 거절할 수 없잖아요?”

. 알았어. 따라 가더라도 꼭 필요한 비즈니스만 하고, 남자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거나 노래방 같은 곳에는 가지 마.”

. 알았어요.”

 

혜경은 34일 일정으로 출장을 갔다. 동경은 역시 동경이었다. 신주쿠와 아카사까 동네는 볼 것도 많고, 식당에서 마시는 사케는 너무 부드럽고 맛이 좋았다. 혜경은 기회 있을 때마다, 특히 하루 스케줄이 끝나고 저녁 식사를 하는 때는 사케를 많이 마셨다. 심지어는 호텔 방으로 사가지고 와서 혼자서도 마셨다.

 

일본에서 혜경이 하는 일은 사장을 따라 다니는 것이었다. 특별히 심부름할 일도 없었다. 호텔 비즈니스룸에서 회의를 하고, 거래 업체 회사를 방문하고, 식사하는 데 동석하는 것이 전부였다. 회사에서 특별한 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옷도 매일 갈아입을 것을 가지고 갔다.

 

화장도 제대로 하고, 젊은 여성으로서 좋은 이미지를 주라는 것이었다. 그게 다 회사를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혜경은 이 대목에서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글쎄 한 번 보고 말 일본 거래처 사람들에게 비서인 내가 잘 보여야 할 이유는 없을 텐데...’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