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호텔방에서 여비서의 스카프가 남겨진 것을 발견하다

 

정 사장은 간밤에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정신없이 잠을 잤다. 오늘은 출장 마지막 날이라 특별한 스케줄이 없었다. 시내 백화점에 가서 쇼핑이나 하고 서울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아침 8시경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 술기운이 남아 있어서 속이 아팠다. 샤워를 했다.

 

호텔 방은 가관이었다. 탁자에는 와인병이 널리 놓여 있었다. 먹다 만 안주가 퀴퀴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정 사장은 혜경이 방에 들어와 같이 술을 마신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그러나 더 이상 자세한 일은 생각나지 않았다. 걱정이 됐다. 혹시 실수라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으나, 별로 그런 일은 없었던 것 같았다.

 

샤워를 한 다음 아침 식사를 하려고 옷을 입었다. 로렉스 시계가 없었다. 아차 싶었다. 그 비싸고 귀중한 시계를 어디에서 잃어버린 것일까? 분명 저녁 식사를 마치고 호텔 방으로 돌아올 때도 롤렉스시계를 차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왜 시계가 보이지 않는 것일까? 방에는 혜경이 들어와서 같이 술을 마신 일밖에 없다.

 

하기야 나이를 먹었고, 어제 저녁 식사 때부터 술을 많이 마셨기 때문에 치매 비슷한 증세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밖에서 시계를 풀어놓고 호텔로 돌아온 것은 아닐까?’ 방 안 여기저기를 찾아보았다. 테이블, 화장대, TV , 방바닥 등을 자세히 살펴보았으나 시계는 보이지 않았다. 정 사장은 같이 출장 온 김 이사를 불렀다.

 

 

이상하다. 시계가 없어졌어.”

어디에서 없어졌을까요? 어제 식사하시고, 바로 룸으로 오셨잖아요? 그 다음 외출하셨었나요?”

아냐. 저녁 먹고 들어와서 샤워하고 잔 거야. 이상하다. 분명 차고 들어왔는데... 밖에서 시계를 풀어놓을 일이 없잖아?”

사장님 방에 호텔 직원이 들어왔었나요? 혹시?”

아니 아무도 안 들어왔어. 다시 한 번 잘 찾아봐.”

 

김 이사는 방을 뒤지면서 쇼파에 여자 스카프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분명 혜경이 목에 두르고 있던 그 스카프였다. 정 사장이 미처 치우지 못한 채, 김 이사를 불러서 시계를 찾아보도록 한 것이었다. 김 이사는 호텔 프론트 데스크로 가서 사고내용을 알렸다. 호텔 직원은 CCTV를 확인시켜 주었다. 정 사장이 머물고 있는 복도와 엘리베이터 주변이 녹화되어 있었다.

 

아니, 저건 혜경 씨 아냐? 이상하다. 왜 사장님 방으로 들어가고, 오래 있다가 혼자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기 방으로 가는 걸까?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거구나?”

 

김 이사는 CCTV를 반복해서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혜경이 들어갈 때에는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는데, 나올 때는 정 사장 방에서 본 그 스카프를 메지 않고 나오는 것이었다. 도둑처럼 문을 아주 조용히 찬찬히 닫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보면서 엘리베이터로 가는 것이었다. 김 이사는 기가 막혔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다는 말인가? 얌전한 척 하더니 저렇게 호박씨를 까는구나?’

 

CCTV상에는 혜경이 시계나 다른 물건을 들고 나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시계를 손목에 차고 있는 것인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긴팔의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 이사는 정 사장에게 이런 사실을 CCTV에서 확인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프론트 직원은 CCTV를 다 확인하고 호텔 직원은 아무도 그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 준 다음, 정 사장 방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 시계가 여기 있네요. 이 시계 맞지요?”

. 맞아요. 내 시계예요. 고맙습니다.”

 

시계는 정 사장이 잠을 잔 침대 위에서 창가 벽 아래로 떨어져 있었다. 정 사장이 시계를 차고, 침대 위로 올라가서 잠을 자면서 시계를 무의식중에 풀어서 침대 위에 놓았는데, 그게 잠을 자는 과정에서 벽 아래로 떨어진 것이었다. 정 사장은 그렇게 아끼고 아끼던 시계를 다시 찾자, 갑자기 어린 아이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환한 웃음을 띠면서 김 이사에게 호텔 식당으로 가서 아침 식사를 하자고 했다.

 

어제 밤에 술을 많이 드신 것 같네요. 이렇게 많은 술을 혼자 드셨습니까?”

, 어제는 이상하게 술 생각이 많이 나서 혼자 늦게까지 마셨어. 지금도 속이 좋지 않아.”

 

김 이사는 쇼파에 놓여 있는 여자 스카프가 혜경의 것임을 알았지만, 그것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호기심이 발동해서 정 사장과 정사를 벌였다는 증거를 확인하기 위해 휴지통도 살펴보았지만, 성관계에 사용한 크리넥스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 것은 당연히 화장실 변기에 넣었거나 혜경이 가져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 사장 일행은 모두 모여서 아침 식사를 했다. 혜경도 참석했다. 정 사장이나 혜경, 모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다만, 김 이사만 혼란스러웠다. 김 이사나 정 사장 모두 시계사건에 관해서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혜경의 스카프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 스카프는 정 사장이 조용히 자신의 짐 안에 넣어두었다. 일행의 스케줄은 예정대로 진행되었고, 특이 사항 없이 무사히 일본 출장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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