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막한 도시에서 낯선 이성과의 만남은 그 자체로 사람을 흥분시킨다>
그런데 경희는 대낮에 점잖게 생긴 사람이 자가용을 대고 태워주겠다니 걱정할 일은 없었다. 더군다나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택시를 잡으려는 모습을 보고 호의를 베풀겠다고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 마음씨가 고마울 뿐이었다.
얼마나 삭막한 세상인가? 남이 아무리 고통을 받아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여름 장마철에 폭우가 쏟아져서 아파트가 침수되고 주차되어 있던 차량이 물에 잠겨 망해도 TV를 보면서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간다. 산불이 나서 소방대원들이 목숨을 걸고 밤을 새워 진화작업을 해도 다른 사람들은 편하게 잠에 든다.
코로나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죽어가도 자신만 걸리지 않으면 골프를 치러 다니고, 부동산투기를 하러 다닌다. 물론 스스로 만든 상황이겠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을 두고 <사자명예훼손>을 공공연히 하는 사람들도 많다.
혼자 타고 다니는 자가용들이 줄로 늘어서 있어도 바빠서 택시를 못 잡고 있는 사람에게 태워주겠다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잘못 호의를 베풀려고 했다가 무안을 당하는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사회는 많이 달라졌다. 외롭고 고독을 느끼게끔 되어가고 있다.
우리 사회는 말로만 그렇지 옛날과 같은 인정이 넘치는 사회는 아니다.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자본주의가 도입된 지 오래 되었고, 물질만능주의가 확산되다 보니, 사람들은 오직 자기 자신, 가정만 생각하고 이웃과도 단절되고 친구도 없고, 의리도 없게 된다.
사람들은 고독하고, 외롭고 소외감을 느끼며,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심지어는 이런 극한상황을 견뎌내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우울증 환자는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우울증이란 살면서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아 생기는 정신적 질환이다. 삶의 맹목적 의지가 약화되거나 소멸되는 것이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삶의 맹목적 의지>가 있어야 겨우 생존할 수 있다. 그런 의지 때문에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음식물을 섭취하고 물을 마신다. 생존을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번다. 그렇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종족번식의 본능 때문에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양육한다.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권모술수를 쓴다. 이런 모든 것이 살고 싶기 때문이다. 남보다 더 잘 살아보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면 어떻게 되는가? <살고 싶지 않고> 오히려 <죽고 싶을 때> 그러한 존재는 <살아있는 상태>에서 <살아있지 않은 상태>로 옮겨간다. 서서히 죽어가거나 급속도록 죽어간다. 아니면 순간적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것이 우울증이다.
19세기부터 우울증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아직 획기적인 치료법은 발견되지 못했다. 병원에 가면 주로 약물치료를 한다. 심리치료나 심리상담을 받으러 가면 그 효과는 아주 제한적이다. 신앙심을 가지고 우울증을 극복한다는 것도 쉽지 않다. 우울증을 극복할 정도의 신앙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애당초 우울증까지 가지 않기 때문이다.
우울증은 예방이 필요한데, 우울증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체질적으로 강하게 태어나야 하고, 어렸을 때 삶의 고통을 당하고 극복하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인생의 본질을 깨닫고,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끊임 없는 자기 수양과 자기 통제, 이것이 있어야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다.
영식과 경희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차를 타자 경희는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영식은 마침 대치동쪽으로 가고 있는 중이라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다. 사실 대치동쪽으로 가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별로 뚜렷한 방향 없이 서울을 방황하고 있던 중이었다.
차안에서는 계속해서 좋은 음악이 흘러나왔고, 낯선 이성끼리 좁은 공간에서 특별한 대화 없이 보내야 하는 시간에 적절한 분위기를 잡아 주었다. 사람 사이에 대화가 중단되면 불편하다. 그렇다고 자꾸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은 성격상 하기 힘든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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