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꿈꾸던 여자가 결혼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불륜에 빠지다>
경희는 중학교 다닐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소설을 썼다.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를 장편소설로 썼다. 소설을 쓰는 6개월 동안 완전히 그녀가 꿈꾸는 사랑에 몰입해 있었다. 소설의 제목은, <이브의 구멍 없는 열쇠>이었다.
21살의 여주인공 <청아>는 가난한 환경에서 열심히 공부를 해서 특수교육과에 입학한다. 대학교 3학년 때 실습을 나갔다가 만난 중증의 장애인 <만복>과 사랑에 빠진다. 성불구자인 만복에게 처녀를 바치기 위해 애쓰는 장면은 그야말로 처절한 <사랑의 아픔>이었다.
청아는 만복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상상임신을 해서 배도 부르고, 아이를 낳아 행복해하는 꿈을 꾸고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 날 같은 시설에서 알고 지내던 연상의 여인인 장애인과 눈이 맞아 만복은 청아를 떠나 도망간다. 남겨진 편지는 <미안해>라는 세 글자였다.
청아는 상상으로 임신한 아이를 낳기 위해 산부인과를 찾아간다. 아무도 없는 산부인과 주차장에서 밤 12시에 공상의 아이를 출산한 다음, 그곳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청아가 산부인과 출입문에 남겨놓은 유서는, <미안해> 세 글자였다.
경희는 타고난 문학소녀였다. 그녀는 남편과 언제나 아름다운 소재로 대화하는 것을 원했지만, 결혼한 이후 남편은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가치관으로 무장하여 돈이 생기지 않는 시와 소설 같은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글을 쓰는 사람들을 글쟁이라고 비아냥거리며 세상 물정 모르는 한심한 족속으로 치부했다.
서로의 가치관이 너무 달라 경희는 절망했다. 그 절망의 벼랑 끝에서의 몸부림이 오래 가다 보니 많이 지쳤다. 친구들이 부부동반으로 음악회를 가고 시적인 편지를 주고받는 것을 보면 너무 부러웠다. 추상성과 낭만성이 삶에 있어서 얼마나 필요하지를 절감하면서도 그 의미를 남편과 나눌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숨이 막혔다.
영식은 경희 남편과는 달랐다. 여자에 대해 자상하고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경희를 만나도 모든 돈을 쓰며, 찻집도 싸구려가 아닌 고급으로 골랐다. 분위기 있는 곳에서 만났다. 술을 마셔도 와인 같은 것을 찾았다. 식당도 돼지갈비집이 아닌 스테이크 하우스 같은 곳을 택했다.
경치 좋은 곳으로 드라이브를 갔고, 뮤지컬이나 연주회를 데리고 다녔다. 그럴 때면 경희는 마치 처녀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화장도 제대로 하고, 옷도 제대로 골라 입었다. 여자에게 그런 분위기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이런 영식에 비하면 남편은 너무 비문화적이었다. 분명 대학까지 나온 사람인데, 지성인이라고 하기도 곤란했다. 밖에서 친구들과 놀러 다닐 때는 골프도 치고, 고급 술집에도 다닌다. 집에서 가족들과 무엇을 하려면, 꼭 돈을 아끼자고 하고 쩨쩨하게 논다. 뮤지컬이나 연극, 영화 같은 것에도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런 것이 불만으로 쌓여만 갔다.
경희는 새로 만난 연인인 영식과 몸을 섞고 서로의 정신적 교감을 위해 노력했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전화를 하고 문자메시지를 수십 차례 주고받았다. 더 이상 통화를 하지 못하고 집에 들어가야 하는 마지막 순간의 아쉬움은 매일 되풀이되면서도 늘상 비슷했다.
남녀 사이의 아쉬움은 지치지도 않았다. 그리움은 몸을 섞으면서 더해갔다. 무엇에 대한 그리움인지도 잘 몰랐다. 육체에 대한 그리움인지, 같이 있던 그 분위기에 대한 것인지, 아니면 처절한 극한상황에서의 탈출에 대한 것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모텔을 전전하기도 했고, 한적한 공원에서 과감한 행위를 시도하기도 했다. 만나면 곧 시도되는 퍼포먼스는 매우 동물적인 것이었지만, 그것을 공유하는 남자와 여자는 사회적 체면을 무시하고 실존의 몸부림을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이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야만과 원시상황, 동물로서의 변환은 모두 자연스럽게 용납되었다.
관계를 하면서도 경희는 아직 나이가 있었기 때문에, 피임에는 철저했다. 결혼 후 남편에게서는 느끼지 못했던 성적 만족도 얻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면서도 가정을 잘 지키고, 남편과 아이들과의 관계도 예전보다 훨씬 더 원만하게 꾸려나갈 수 있었다.
지금까지 결혼하고 다른 남자와 육체관계를 가진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아무리 남편과의 관계가 불만스러웠다고 해도, 이미 결혼한 몸이고, 아이가 있었고, 주변 사람들의 이목이 있었기 때문에 외도는 어디까지나 TV의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예외적인 일, 사랑의 일탈, 비정상적인 현상으로 생각했다. 자신이 그 주인공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처녀 시절의 낭만은 결혼생활에서 철저하게 파괴된다. 남는 것은 삭막한 현실이다. 황량한 사막에서 모래밭을 걸어가는 낙타의 등에 실려가다가 오아시스에서 다른 말을 만나 <살아있음>에 이끌리는 것과 같다. 도덕과 윤리에서 일탈하는 현상에는 항상 원인이 있다.
'작은 운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한강이 보이는 모텔방에 남편이 들이닥쳐 불륜현장이 발각된 여자> (0) | 2020.08.04 |
---|---|
<유부녀가 자신을 지켜줄 확실한 남자를 애인으로 삼고 행복에 빠지다> (0) | 2020.08.03 |
<인간이 성을 제대로 억제하지 못하면 현실에서 비참한 상황에 빠진다> (0) | 2020.08.02 |
유부남과 유부녀가 우연한 만남에서 지속적인 연애를 시작하다 (0) | 2020.08.02 |
<삭막한 도시에서 낯선 이성과의 만남은 그 자체로 사람을 흥분시킨다> (0) | 2020.08.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