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67)
수범은 절망했다. 구속되어 재판을 받을 때에도 그랬지만, 나중에 형이 확정되어 정식으로 교도소 생활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수범은 그야말로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도대체 고의이든 과실이든 수범이 어떤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형법상 인식 없는 도구에 불과했다. 악질적인 마약조직에서 수범을 순간적으로 이용했던 것이다.
괌공항에서 수범에게 짐을 들어달라고 부탁을 했던 할머니도 마찬가지로 마약조직에 이용 당했던 여자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할머니는 이미 상습적으로 마약을 운반해주는 역할을 담당했을 것이고, 오직 수범만 일회용으로 이용 당했던 것이다.
하지만 법은 냉정하고 인정 사정 없다. 그리고 법을 집행하는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책임이 있기 때문에 수범을 검거했으면 마약운반책으로 처벌하면 그만이지, 수범의 억울한 변명 내용을 인간적으로 귀담아 들어주고 무혐의석방할 이유는 없는 것이었다.
실제로 뉴스를 보면 이런 마약조직들에 의해 이용 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수범 아버지가 아들 사건이 문제가 된 이후에 뉴스를 유심히 보니 이런 사건도 있었다.
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남자 2명이 내복에 마약을 숨겨서 밀반입하다가 검거되었다. 두 남자는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혐의로 각각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정말이지 수범은 사전에 이러한 마약조직에 포섭된 운반책도 아니었다. 마약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 관계도 없는 대학생으로서 단순히 괌에 친구들과 여행을 갔던 중 철저하게 이용당했던 피해자였다.
수범은 무엇인가 잘못한 것이 있어서 수사를 받고, 재판을 받거나 징역을 살면 덜 억울했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시간이 가면서 점점 자포자기상태가 되었다. 미국 교도소에서 오래 생활하다보니 한국말도 잊어버리게 되었다. 미국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데, 그건 쉽지 않았다. 모든 것이 무섭고 두려웠다.
같은 감방에 있는 미국 사람들의 눈빛은 정말 무서웠다. 그리고 교도관들의 냉정한 태도와 엄격한 말씨는 완전히 사람을 주눅들게 만들었다.
미국 교도소에서는 처음 입소하면 정신교육을 시킨다고 운동장에서 30미터 정도의 정사각형 선을 그어놓고 둥근 원통에 4가지 색깔의 벽돌을 열장 정도 넣어서 운반을 시킨다.
무거운 벽돌이 들어있는 원통을 순차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재소자들은 인생을 포기한 중죄인들이었다. 그들은 별로 말도 없었다. 수범은 그 긴 세월 징역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했다.
미국 교도소생활 중 가장 어려운 것은 물론 언어였지만, 시간이 가면서 더 어려운 것은 음식이었다. 한국 음식에 익숙해있던 수범에게 미국 교도소에서 주는 음식은 정말 역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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