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남자의 몸에 많은 여자의 이름이 문신으로 새겨져있다

 

그랬더니 사기꾼은 갑자기 옷을 벗고 왼쪽 겨드랑이 안에 있는 문신을 강 교수에게 보여주었다. “여기 보이지?”

 

그곳에는 아주 작은 글씨로 ‘미경“이라고 씌여 있었다. 강 교수는 순간 겨드랑이 악취 때문에 가스 중독을 일으킬 뻔했다. ‘아! 정말 이 남자가 미경의 애인이 틀림 없구나. 큰일 났네.‘

 

“그래 내 말이 우습게 들리는 모양인데, 돈을 주기 아까우면, 학교에서 만나자. 총장 앞에서 누가 옳은지 판결을 받으면 돼. 나는 감방에 있으면서 법에 대해 많이 공부했어. 웬만한 변호사보다 법을 더 잘 알아. 남의 애인하고 공짜로 했으면, 당연히 돈을 물어내야지. 대학 교수가 그런 법도 모르면서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 거야? 너도 교수 때려치고 제비족을 하는 게 낫겠다.”

 

강 교수는 무서웠다. 그 남자 겨드랑이에는 미경 이외에도 다른 여자 이름이 몇 개 더 있었다. ‘정자’ ‘난자’ ‘금슬’ ‘찰떡’이라는 글씨가 조그맣게 순차로 씌어있었다. ① ② ③ ④ ⑤ 이렇게 일련 번호를 매기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글씨체가 모두 다른 것을 보니, 아마도 해당 여자들이 자필로 직접 쓴 것 같았다. 앞으로 여자 이름을 더 써넣을 공간이 열명은 남아 있었다.

 

<미경>이 제일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을 보니, 미경이 상당한 지위를 인정받았던 것처럼 보였다. 옛날 왕들이 정식의 왕비 이외에 수많은 후궁을 두었듯이, 이 건달도 미경을 첫 번째 왕비로 생각하고, 나머지 정자, 난자, 금슬, 찰떡 같은 여자들은 후궁으로 여겼던 것 같았다.

 

남자의 겨드랑이 안에 써 있는 이름은, 정자, 난자, 금슬은 모두 여자 이름 같은데, 마지막에 있는 <찰떡>은 여자 이름인지, 아니면 떡이름인지 혼란스러웠다. 어떤 여자의 예명(藝名)이거나 닉네임일 수도 있었다. 무척 궁금했지만, 강 교수로서는 그 건달 깡패 같은 친구에게 그걸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찰떡은 원래 강 교수가 아주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강 교수는 일반떡보다 찰떡을 좋아했다. 찰떡이란 ‘찹쌀 따위의 차진 곡식으로 만든 떡’을 말한다. 영어로는 ‘glutinous-rice cake’이라고 한다. 찰떡 궁합이라고 하면 두 남녀가 아주 잘 맞는 것을 말한다.

 

강 교수가 중학교 일학년 때 친구들과 찰떡 때문에 크게 싸운 적이 있었다. 같은 반 친구가 집에서 떡을 해서 가지고 와서 친구들과 같이 교실에서 먹었는데, 강 교수는 찰떡이 먹고 싶어서 멧떡을 놔두고 찰떡을 먼저 집어서 먹었다. 그랬더니 일진회 소속 덩치 큰 친구가 화장실 갔다가 뒤늦게 와서 찰떡을 찾는 것이었다.

 

“아니, 내 찰떡 어디 갔어? 엉~” 순간 열명 가까운 친구들은 숨을 죽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강 교수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이 먹었고, 지금 씹는 중이라고 했다. 일진회 친구는 그냥 강 교수의 복부를 세게 발로 찼다. 강 교수는 그냥 뒤로 나가자빠졌다. 그러면서 무의식적으로 입에 있던 찰떡 씹고 있던 것을 토했고, 그 토한 것이 일진회 친구 옷에 뿌려졌다.

 

그 친구는 강 교수가 일부러 자신에게 음식물을 토한 것으로 알고 흥분했다. 주머니에서 커트칼을 꺼내서 강 교수 목에 들이댔다. 강 교수는 하마터면 찰떡 하나 때문에 이 세상을 떠날 위기에 처했다.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성이 풀렸는지, “너, 앞으로는 절대로 찰떡은 건드리지 마!”라고 하면서 강 교수의 얼굴에 침을 세 번 뱉었다. 그리고 기분 나쁘다는 식으로 인상을 쓰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이런 일을 겪고 난 후부터는 강 교수는 찰떡은 일체 입에 대지도 않았다.

 

뿐만 아니라, 여자와 잠자리를 할 때에도 여자 입에서, “우리는 찰떡 궁합이예요”라는 말이 나오면 옛날 일이 떠올라 극심한 트라우마를 겼었다. 그 순간 강 교수는 벌떡 일어나, 옷을 입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속궁합이 너무 잘 맞아 황홀해서 무심코 ‘찰떡 궁합’이라는 오래 된 속담을 꺼냈다가 그 자리에서 퇴짜를 맞은 여자 역시 그 다음부터는 찰떡은 절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강 교수는 건달의 겨드랑이에서 <찰떡>이라는 문신을 본 순간, 속이 메스꺼웠다. 게다가 겨드랑이는 3개월 동안 전혀 딲지를 않았는지, 옛날 재래식 화장실 풀 때 나는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겨드랑이 악취와 <찰떡>의 공포가 뒤섞여 , 강 교수는 그야말로 공포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심야에 CGV관에서 혼자 보다가 기절하기 직전의 상황이 되었다.

 

그럼에도 강 교수는 이 문제만큼은 꼭 알고 넘어가야겠다는 확고한 신념에서,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기 써있는 이름들은 모두 여자 이름인 것이 맞지요? 이름이 모두 예뻐요. 정자, 난자, 금슬... 그런데 <찰떡>도 여자 이름인가요? 아니면 떡이름인가요?”

 

건달은 예상을 뒤엎고, 갑자기 환하게 누런 이빨을 내보이면서 웃었다. “아! 그건 모든 사람들이 늘 하는 질문이야. <찰떡>은 5년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어. 본래 이름은 ‘주라주’였어. 그런데 워낙 나와 속궁합이 잘 맞아서 내가 붙여준 예명이야. 나는 함부로 아무에게나 <찰떡>이라는 예명을 주지 않는데, 그 여자는 내 일생에 나와 가장 속궁합이 잘맞는 여자라 내가 특별히 붙여주었어.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여자가 음주운전하던 나쁜 인간이 몰던 <떡배달 1톤 탑차>에 치어서 즉사했는데, 사고 장소가 우연히 그 동네에서 가장 큰 <떡방앗간> 바로 앞이었어. 정말 미신 같은 이상한 일이야. 그 사고가 있고난 다음부터 나도 이상하게 찰떡을 먹으면 꼭 복통이 나고, 체해서 병원에도 가야했고, 찰떡을 먹은 날 밤에는 꿈에 그 <찰떡>이라는 여자가 꼭 나타나 나를 괴롭히는데, 머리는 산발을 하고, 입에는 긴 찰떡을 물고 있고, 그 떡에는 팥이 많이 뭍혀져있어 핏빛으로 보이는 거야. 그래서 꿈에서 나는 몇 번이나 죽었다 살아났어. 그래서 내 몸에 새긴 <찰떡> 문신을 지울까도 생각해봤는데, 그랬다가는 더 내명에 못살 것 같아서, 지금 그대로 놔두고 있는 거야.”

 

그 남자 겨드랑이에는 영어로 쓰여진 이름도 하나 있었는데, 아마 길게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많이 배운 미국 여자 이름 같았다. 미국 여자가 자신의 이름을 너무 필기체로 갈겨써서 그런지 강 교수는 아무리 돋보기를 대고 봐도 정확하게 읽을 수 없었다.

 

강 교수는 그 남자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은 더럽게 못생겼는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여자들을 애인으로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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